부산 출신. 1949년 동양외국어전문학교 노어과를 수료하였다. 소아마비에 의한 불구의 몸으로 힘겹게 살면서 시작에 힘썼다.
1955년 대한광업회에 근무하였고, 1962년 국제신보 상임 논설위원, 1966년 월간스포츠의 편집장 등을 역임하고, 그 뒤에는 번역과 출판물의 편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971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를 지냈다.
1955년 서정주(徐廷柱)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균열(龜裂)」을 비롯하여 1956년 「청자수병(靑磁水甁)」, 1957년「매(梅)」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초기의 시는 전통적 정서를 바탕으로 우아하고 섬세한 시어를 구사했고, 4월의거를 고비로 현실성과 사회성을 띠게 되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봄」·「우리들은 샘물에」·「성」·「그대들 둘이서」 등이 있다. 5월혁명 이후에는 더욱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을 썼고, 이 무렵 『60년대사화집(六十年代詞華集)』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운명·죽음 따위 인간의 본원적인 문제를 다루어 각박한 삶의 의식을 반영했다. 이런 계열의 작품으로는 1971년에 발표한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신호(信號)」·「네온사인」·「횡단(橫斷)」 등이 있다. 1959년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처녀승천(處女昇天)』과 『청자수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