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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정호가 교민들의 정보 교류를 위하여 창간한 신문.
정의
1981년에,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정호가 교민들의 정보 교류를 위하여 창간한 신문.
발간 경위 및 변천

1981년 12월 1일 남정호(南玎鎬)가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창간하였다. 남정호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한때 한국일보 유럽통신원으로 활약하다가 이 신문을 창간하였다. 독일에는 우리 교포가 약 2만 명이 살고 있었으며, 교포들끼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여 탄생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재정난으로 종간되었다.

내용

지면구성은 타블로이드판 12면으로 국내신문과 같은 국한문혼용 횡조체(가로짜기)였으며, 활자는 6호체, 횡5단조로 선명한 지면이 특색이었다. 일본이나 미주 지역의 교포신문들이 주로 대형판인 데 비해 타블로이드판으로 면수를 늘렸고, 월간으로 발행하였으며, 소형잡지 형태에 가까웠다. 편집기술도 컬러사진까지 넣어 다채로웠을 뿐 아니라, 짜임새 있는 지면배치를 하였다. 인쇄시설과 사원규모는 확실하지 않다.

정치기사는 거의 다루지 않았고, 주로 유럽 각국에 산재한 교포들의 소식을 실었다. 각 호마다 유럽 각국의 풍물을 소개하면서 각국의 교민 동정과 각종 행사 등을 다각적으로 다루었다. 또, 교포들의 모국방문 절차나 유럽 체류기간의 갱신문제, 유학안내, 체육·과학·만평·음악·예술 등의 분야에서 한국인들의 활약상을 소개하였고, 관광안내와 각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의 동정 등 매우 상세한 보도를 하였다.

또한, 유럽의 한국인타운을 순방하면서 그들의 성공비담 같은 읽을거리도 실었다. 한편, 유럽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련 거주 교포들의 소식과 소련의 한국인 콜호스(kolkhoz: 소련의 집단농장)에 관한 근황도 실었다. 생활, 일반 소식, 흥미 있는 기사 등을 골고루 다루어 비교적 안정된 지면체재를 갖추었다.

경영상 어려웠던 점은 전 유럽에 배포하고 대금을 수금하는 업무상의 문제였는데, 이 점은 일본이나 미주 지역의 교포신문들보다 훨씬 더 그 어려움이 컸다. 광고도 유럽 각지의 것을 실었지만, 유럽 교민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사업가가 많지 않아 영업 광고는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의의와 평가

일본이나 미주 지역에 비하여 교포신문이 거의 없던 유럽 지역에서 발간되었던 신문으로, 오랫동안 유럽 각국의 3만여 교민을 위한 유일한 교포지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문통감(韓國新聞通鑑)』(윤임술 편, 조선일보사, 2001)
『한국신문백년지(韓國新聞百年誌)』(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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