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발레의 양식을 정립하고 레퍼토리 개발을 통해 발레를 진흥할 목적으로 1962년 국립무용단 소속으로 창단되었다. 1972년 국립무용단에서 독립하여 국립중앙극장(서울 장충동 소재) 산하 단체로 재출범하였다. 임성남(재임 1962∼1992)·김혜식·최태지·김긍수·박인자가 국립발레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2008년부터 최태지가 단장을 맡았다.
창단 이래 170건 이상의 장·단기 공연 행사를 펼친 국립발레단은 레퍼토리들에서 고전 양식을 주축으로 신고전적 양식을 결합하는 경향이 현저한 가운데, 2000년대 이후에는 컨템퍼러리 발레 양식을 수용하는 선으로 레퍼토리를 넓히는 작업을 모색해왔다.
1962년 창작 발레 「백의 환상」(안무: 임성남)을 공연한 이래 연간 2회의 정기 공연을 비롯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10회 가량 공연하였다. 서구식 예술감독 중심 운영 방식을 도입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연간 60회를 넘는 공연 실적을 보여 공공 무용단에 필수적인 양적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1990년대 후반에 「호두까기 인형」이 매년 연말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1997년부터 ‘해설이 있는 발레’ 행사를 일반인과 소외 지역을 대상으로 수시로 열어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한편 해외 안무자를 객원으로 초빙하여 레퍼토리의 내실을 꾀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런 기획들을 지속하는 가운데 2000년대에 유리 그리가로비치·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마츠 에크·보리스 에이프만 등 해외 유수 안무가를 객원으로 초빙해서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로미오와 줄리엣」, 「카르멘」, 「레퀴엠」 등의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조지 발란신·미하일 포킨·루돌프 누레예프·마리우스 프티파·롤랑 프티 등의 안무작 또는 새 고전 버전을 적극 도입하였다.
국립발레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 발레단의 위상에 맞추어 고전 발레 양식의 적절한 수용과 한국 창작 발레의 발굴을 양대 목표로 견지하였으며, 2000년대 들어 세계화를 단체의 비전으로 부가(附加)하였다. 1974년의 「지귀의 꿈」을 비롯하여 「처용」, 「배비장」, 「춘향의 사랑」, 「왕자 호동」, 「고려애가」가 임성남 단장 재임시에 발표된 창작 레퍼토리이며, 그후 「바리」(1998년)와 「오델로」 그리고 춤과 극성(劇性)의 조화 면에서 호평을 받은 새 버전의 「왕자 호동」을 발표하였다.
1975년의 「지젤」에 이어 1977년 4월 외부 객원 출연진과 함께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을 실현하여 국내 발레계의 잠재력을 확인시킨 이래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지젤」, 「해적」, 「돈키호테」, 「신데렐라」, 「고집쟁이 딸」, 「코펠리아」, 「레이몬다」 등의 고전 발레를 정규 레퍼토리로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2000년도에 재단법인화 체제로 운영상의 원활함을 확보하고 인력을 보강하여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등 자력 경영 시대로 진입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권 정상의 발레단으로 발돋움하였으며, 2000년 이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 10여 차례 해외 공연을 가져 해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상으로 한국 발레의 면모를 발레 본거지에 인식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2000년대 후반에는 러시아 발레단과 합동 공연들을 가졌다.
국립발레단은 이사진·행정 스탭과 80여 단원·준단원 체제로 운영된다. 1990년대까지 김성일·김학자·진수인·김혜식·이상만·박인자·김순정·문병남·백영태·김긍수·민병수·나형만·최태지·제임스 전·강준하·이원국을 비롯 다수의 역대 단원들이 국립발레단과 함께 성장하여 한국 발레의 산실(産室)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국립발레단에서 스타 시스템이 태동하면서 김주원·김지영·신무섭·장운규·이영철·김현웅·윤혜진 등이 스타 역량을 발휘하였다.
창설 이래 일정 기간 발레인 육성의 산실이었으며, 창작 발레 등의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해외 고전 및 현대 발레 도입을 통해 발레의 저변을 넓히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