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의 보살상.
개설
내용
완만하게 처리된 둥근 어깨는 삼도(三道)의 표현이 없는 굵은 목과 연결되어 있다. 목걸이는 두 줄로 표현되어 밑으로 각이 지게 드리워진다. 가슴 위의 대각선은 등 뒤에도 보이고 있어, 얇은 내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천의는 상의 양쪽에 대칭으로 뻗쳐서 4단의 지느러미처럼 표현되었는데 매우 인위적이고 도식화되어서 사실적인 감이 없다. 양팔 밑으로 내려뜨려진 천의는 무릎 부분에서 엇갈려 교차되었고 상 뒤에서는 길게 허리 밑에까지 늘어졌다.
양어깨에 걸쳐져 내려오는 큼직한 구슬장식은 허리 밑부분의 둥근 원형 장식을 중심으로 교차되었다. 상의 전체 비례로 보아 너무 밑으로 내려온 듯싶다. 상의(裳衣)의 앞부분은 두 손에 가리워서 허리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양다리 위로 주름이 없이 밋밋하게 내려오며 몸 뒤의 허리 부분에서는 두 줄의 선으로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원형의 큼직한 대좌는 부식이 심하여 그 질감이 불신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주며 단판(單瓣)의 내림연꽃받침으로 되어 있다.
특징
이 상과 비슷하게 봉주(捧珠)하고 있는 모습이나 천의가 양쪽으로 뻗친 모습은 일본의 호류사(法隆寺) 몽전(夢殿)의 주존불인 구세관음(救世觀音)과 일본의 초기 불상의 대표적인 사십팔체불(四十八體佛)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일본의 초기 불상에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보살상은 부여의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 출토 금동보살입상이나 평양의 원오리사지(元五里寺址)에서 나온 흙으로 빚은 이조(泥造)보살상들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천의가 양쪽으로 뻗쳐 있는 모습이나 조각의 표현이 간략화된 점 등에서 삼국시대 보살상의 초기양식을 이어주고 있다. 그러나 몸에 구슬장식이 보이는 것이나, 보주를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은 보살 양식의 발달에 있어서는 그 다음 단계에 나타나는 요소이다. 따라서 이 상은 양식상으로 미루어 보아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조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 『삼국시대불교조각론』(강우방, 국립중앙박물관, 1990)
- 『문화재대관』5-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한국의 불상』(진홍섭, 일지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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