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보살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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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보살상.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2일
금동보살입상 미디어 정보

금동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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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의 보살상.

개설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목 일부를 수리했으며, 왼손과 천의(天衣)자락 일부가 결손되고 오른손이 완전히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금도금의 상태가 양호하고, 신체의 조형성이 대담하게 묘사된 금동보살상이다.

내용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서려 있는 동안(童顔)의 얼굴은 원만한 표정이며, 머리 위에는 머리를 묶어올린 보계(寶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정면에는 보관을 끼웠던 자국과 함께 보관의 일부가 남아 있다. 목의 삼도(三道)는 굵직하게 표현되어 상의 견고성을 더해주며, 두 귀는 길어져 어깨 위에 붙어 있다.

상체는 나형(裸形)으로 가슴이 두툼하고 허리가 잘록해져 건강한 신체의 조형성이 강조된 반면, 하체는 훨씬 길어져 늘씬한 팔등신의 신체비례를 이루고 있어 상 전체에 균제미(均齊美)와 안정감을 더해준다. 이러한 장신화의 경향은 중국 수나라 조상양식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천의는 어깨와 두 팔에 걸쳐 몸 좌우로 물결치듯 흘러내렸으며, 하체의 군의(裙衣)는 얇아 다리의 윤곽이 잘 드러나 있는데, 얕게 새겨진 옷주름은 타원형으로 주름잡혀 있다. 무릎 밑에서 U자형으로 길게 드리워진 영락장식(瓔珞粧飾)은 묵중하게 표현되었다.

상의 뒷면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끼웠던 자국이 남아 있다. 제작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세부장식에서 중국 북제(北齊) · 주(周)의 양식을 잇는 한편, 훨씬 장대해진 신체비례 등에서 수나라 조상양식이 짙게 반영되어 있어 제작시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삼국시대불교조각론』(강우방, 국립중앙박물관, 1990)

  • - 『문화재대관』5 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 『한국인체조각전』(호암미술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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