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개설
내용
의상이 보여 주는 특이한 양상은 다음과 같다. 대의(大衣)를 오른쪽 어깨에서 약간 벗겨질 듯이 걸쳤다. 그리고 주름을 허리 아래에서부터 표현하여 가슴과 배가 유난히 많이 드러나 보인다. 허리 부분에 있는 띠 매듭 모양의 표시는 군의(裙衣)라기보다는 대의 속에 대각선으로 입었던 내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아래에 U자형의 주름이 계단식으로 여러 번 겹쳐져 늘어졌다. 더 아래의 군의 자락은 곧게 늘어진 여러 주름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발목이 많이 드러나 보일 만큼 위로 치켜올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옷의 연결 부분이 명확하게 처리되지 못하여 형식이 모호하다. 주름도 대체로 굵고 투박하여 예리한 맛이 덜하다.
불상의 자세는 몸 전체를 정면에서 볼 때, 얼굴 부분, 목에서 허리 그리고 허리 이하의 세 부분에서 가볍게 꺾여 있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손의 모습〔手印〕은 일반적인 형식과 달리 오른손은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왼손은 손가락을 앞쪽으로 내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단판앙련(單瓣仰蓮) 과 복판복련(複瓣覆蓮)이 한데 붙어 있다. 그 아래에 안상(眼象)이 각 면에 투각된 팔각의 받침이 있는데, 이러한 대좌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특징
연화대좌 밑에 8각형 기단과 각 면에 표현된 안상은 8세기에 들어와 유행하는 대좌 형식이다. 이는 경주 감산사 석조 아미타여래 입상(국보, 1962년 지정)의 대좌와 비교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금동불상의 경우에는 새로운 양식적 형태가 다른 불상보다 더 빨리 적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의 좌상에 비하여 두꺼운 옷, 굵고 약간 투박한 옷주름, 모호한 옷의 형식, 덜 유연한 자세,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는 전체 인상 등으로 보아 이 불상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하겠다. 따라서 이 불상은 대략 7세기 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보물)불교조각 Ⅰ』(문화재청, 2016)
- 『문화재대관』5-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한국미술사연구의 이·삼문제」(김원룡, 『아세아연구』7-3,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6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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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부처의 팔십수형호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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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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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 불상이나 보살의 옷에서 볼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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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 줌을 보이는 결인(結印).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운 모양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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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위로 향하고 있는 홑잎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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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겹잎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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