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동시대(純銅時代) 또는 동석시대(銅石時代)라고도 불린다. 역사적으로는 청동이 순동제품보다 많이 제작되기 시작해 석기와 함께 사용된 시기인 청동시대 이전의 시기이다.
금석병용기는 영어로 ‘에이니올리식(aeneolithic)’, 이탈리아어로는 ‘에넬리티코(enelitico)’ 이다.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구리나 청동을 의미하는 ‘아에네우스(aeneus)’ 와 그리스어에서 돌을 의미하는 ‘리소스(lithos)’를 합성하여 만든 용어이다. 그러나 그리스어에서 구리나 청동을 의미하는 ‘캘코스(chalkos)’ 와 그리스어 ‘리소스(lithos)’를 합성하여 ‘캘콜리식(chalcolithic)’이라는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 양자는 동의어라고 할 수 있으나 오늘날 더 빈번하게 쓰이는 용어는 ‘캘콜리식’이다.
유럽에서 ‘캘콜리식’(금속병용기 또는 동석기시대)의 시대구분은 러시아 남부지역, 발칸반도, 보헤미아지방, 다뉴브강 중하류, 남부 프랑스, 피레네 산맥지역, 그리스, 이탈리아 등 북부 유럽을 제외한 동부, 남부유럽 거의 전역에 적용되며 신석기시대 끝무렵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적인 단계로 보고 있다. 발칸반도를 예로 들면 유럽에서 가장 이른 기원전 5000년 무렵에 금속제련술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를 구리시대 또는 동석기시대(Copper Age or Chalcolithic Age)로 부른다. 아직 가장 주요한 도구재료는 돌이며 적은 양의 금속이 실제적 쓰임새 보다는 지위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근동지방에서 동석기시대에 해당하는 문화는 할라프(Halaf)문화와 우바이드(Ubaid)문화이다.
신석기시대 말기에 주동법(鑄銅法)이 발명되어 여러 가지 도구가 제작되었다. 이 때 종래의 석기와 함께 동기가 혼용되어 이 시기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 시기였다.
이러한 순동은 4대 문명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후기 신석기시대인 하수나(Hassuna: Yarim Tepe, 서기전 6000∼5250)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크레타섬, 동쪽으로는 인더스강에 이르는 지역에서 칼·전투용 도끼·창·화살촉 등의 무기와 장신구에 동제품이 많이 쓰였다.
그러나 위의 경우처럼 석기-순동-청동기-철기시대의 발전단계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청동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철기시대로 들어간 곳도 있고, 또 청동과 철이 함께 사용된 곳도 있다.
이 시기에 농업 등 생산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계급분화가 시작되고, 족장의 세력이 강화되었으며, 문자도 사용되고, 원시적인 소국가나 부족국가가 발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관학자들이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를 발굴한 뒤 금석병용기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과도적 의미가 아니라 돌과 청동기 나아가 철기까지 포괄되는 시기였다. 이 금석병용시대는 전체로 조선의 석기시대라는 큰 틀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결국 조선의 석기시대는 그 안에서 돌과 청동, 철을 같이 쓰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구분이 조선의 선사시대가 파행적이고 정체되어 있었음을 강조하는 식민사관의 적용 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광복 후 남북한의 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의 금석병용기를 극복하고 청동기시대의 확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오늘날은 일제가 적용한 의미의 금석병용기를 의식하기조차 어렵다. 다만 동석기시대 개념의 입장에서, 청동기가 나오지 않거나 장식용 등 극히 일부의 것만 나오는 초기 민무늬토기사회에 대해서는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