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구려의 휴양군(休壤郡, 또는 金惱)인데, 신라의 영토가 되자 757년(경덕왕 16) 금양군이라 고치고 습계(習谿)ㆍ제상(隄上)ㆍ임도(臨道)ㆍ파천(派川)ㆍ학포(鶴浦) 등 5개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성종 때 현령(縣令)이 파견되었고, 1285년(충렬왕 11) 통주(通州)로 개명하고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통천군으로 바꾸었다. 1762년(영조 38) 고을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나 한 때 현(縣)으로 격하되기도 하였으나 곧 환원되었다.
고적으로는 고구려 때 쌓았다고 전하는 벽산성(碧山城) 등 3개의 산성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임도 등 고구려의 3개 폐현지(廢縣址)도 있다. 명승지가 곳곳에 분포되어 고려에서 조선에 걸쳐 문인소객들의 방문이 빈번하여, 그들이 남긴 많은 주옥같은 시문(詩文)이 『동국여지승람』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