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 지리
  • 지명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지역의 옛 지명.
이칭
  • 이칭곡양(穀壤), 금과현(衿果縣), 금양현(衿陽縣), 금주(黔州), 금천현(衿川縣), 시흥군(始興郡), 잉벌노현(仍伐奴縣)
지명/고지명
  • 제정 시기940년
  • 지역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 폐지 시기1414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종수정 2026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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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지역의 옛 지명.

내용

일명 금주(黔州). 원래 고구려의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757년(경덕왕 16) 곡양(穀壤)이라 개칭하고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금주로 고치고, 성종 때 단련사(團練使)를 두었으나 목종 때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에 이속시켰다가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4년(태종 14) 이웃 과천(果川)과 합쳐 금과현(衿果縣)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폐지되고, 양천과 병합하여 금양현(衿陽縣)을 두었으나 또 폐지되고, 1416년 금천현(衿川縣)이 되었다. 1795년(정조 19) 시흥군으로 개칭되었다.

고적으로는 영랑성(永郞城)이 있고, 누정으로 효사정(孝思亭)이 유명하였는데, 그 위치에 관하여 이설이 많다. 지금의 용봉정(龍鳳亭) 자리로 비정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고려사(高麗史)』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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