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세련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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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계회도(契會圖).
기로세련계도 / 김홍도 미디어 정보

기로세련계도 /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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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계회도(契會圖).

내용

화면의 상단부에 홍의영(洪儀泳)이 쓴 장문의 제발(題跋)이 적혀 있다. 그 아래 유한지(兪漢之)가 쓴 제목이, 그 옆에 ‘단원사(檀園寫)’라는 관서(款署)와 ‘김홍도인(金弘道印)’이라는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그림의 아래에는 계회에 참석하였던 64인 기로들의 성명과 관직이 적혀 있다.

이 그림은 1804년(순조 4) 송도(松都)의 만월대(萬月臺) 아래에서 있었던 기로세련계회의 장면을 실사한 것이다. 화면의 구도를 위하여 대담하게 실제로 있는 송악의 왼쪽 연봉을 안개로 가려 버렸다. 그곳에 생긴 공간과 공백 비슷한 연결감을 주는 중부의 차일을 합쳐서 그림의 왼쪽 중간에 김홍도 특유의 회화적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 위에 송악을 묘사하고, 그 표면은 하엽준(荷葉皴)을 변형시킨 단원 준법(檀園皴法)으로 처리하였다.

계연(契宴)은 화폭의 약간 아랫부분에 설정했다. 64인의 기로들을 표현할 필요에서 그 하단부 중심에 비스듬히 4각을 그리면서 그 전후좌우 주변에 130∼140인의 인물을 배치하여 연회 광경을 묘사하였다. 상단부 송악에 대치되는 수목과 언덕을 맨 아랫부분에 배치하였다. 균형상 송악의 중량에 눌리는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만월대 앞뜰에 많은 인원을 묘사하였다. 특히 왼쪽 송림에 대각되는 오른쪽에 집중적으로 인원을 배치하였다.

그래서 화폭 전체의 흐름이 송악의 정봉으로부터 왼쪽으로 흘러서 송림으로, 다시 계회의 중심부를 횡단하여 오른쪽 아래의 군중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맨 아랫부분의 수목·토파(土坡)로 단락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모든 연결·교차·대각의 한복판에 넓은 술상이 화면 전체를 빈틈없이 통일시키고 있다. 실경과 풍속 그리고 기법과 화상의 조화가 밀도 있게 처리된 작품으로 그의 만년의 화풍을 보여 주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 『한국의 미』21 -단원 김홍도-(정양모 감수, 중앙일보사, 1985)

  • - 『우리나라의 옛그림』(이동주, 박영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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