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전 갑자진연도 ( )

회화
유물
1744년(영조 20)에 영조의 기로소(耆老所) 입소 경하 진연 후 제작된 계병(契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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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44년(영조 20)에 영조의 기로소(耆老所) 입소 경하 진연 후 제작된 계병(契屛).
개설

「숭정전 갑자진연도(崇政殿甲子進宴圖)」는 영조가 51세 된 1744년에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경하하여 경희궁 숭정전에서 거행된 진연을 마치고 제작된 계병이다. 6첩 병풍으로 제1첩부터 제3첩에 진연 장면이 배치되고 나머지 3첩에 좌목이 쓰여 있다. 좌목은 “갑자 9월 진연 시(甲子九月進宴時)”로 시작되어 이 행사의 일시와 내용을 알려 준다.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진연은 10월 7일에 경희궁 숭정전에서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 「숭정전 갑자진연도」를 다른 행사로 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9월에는 진연을 거행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좌목의 명단이 『영조갑자진연의궤』와 일치하므로 제4첩에 ‘9월 진연’이라 언급한 것은 9월에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는 취지에서 제작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 병풍은 10월 7일 숭정전에서 거행된 진연을 그린 것이 분명하다.

갑자년 진연의 절차와 내용은 1743년(영조 19) 영조가 50세 된 것을 기념하여 치러진 진연을 범본으로 삼아 준비되었다. 영조에게 9번 술잔을 올렸으며 정재(呈才)는 8차례 공연되었다. 영조는 연향에 참석할 관원의 범위를 폭넓게 하명하여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로 치러졌다. 좌목 부분은 붉은 선으로 상·하단을 나누고 상단에는 참연 제신 36명, 하단에는 종친 36명 등 총 72명의 성명 관직을 적었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진연에 참석한 인물은 총 139명이었는데 좌목에는 그 중 2품 이상만 기록하였다. 즉, 이 병풍은 연향에 참석한 신료 중에서 2품 이상 된 자들이 주도하여 만든 계병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내용

「숭정전 갑자진연도(崇政殿甲子進宴圖)」를 보면, 숭정전 북벽에 일월오봉병을 배경으로 교의(交椅)와 고임 음식들이 차려진 찬안상(饌案床)이 설치되어 있다. 찬안상의 아래쪽 우측에는 왕세자의 시연위(侍宴位)가 보이는데 다른 시점에서 묘사되었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이 공존하는 것은 조선시대 행사 기록화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왕세자의 시연위 맞은편에 차려진 또 하나의 작은 찬안은 소선(小膳)과 대선(大膳)을 올리기 위한 빈 탁자를 그린 것이다. 마시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차별된 술항아리가 6곳에 설치되어 있다. 진작위(進爵位) 앞에는 진작관이 앉아 있고 진작관이 올린 술잔을 내관(內官)이 받아 영조에게 바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참연의 범위가 넓고 숫자가 많았던 터라 참연자들의 좌차(앉는 자리의 차례)는 상당히 복잡한데, 대체로 오른쪽(동쪽)에는 종친과 의빈이, 왼쪽(서쪽)에는 문무관이 자리하였다. 화면에 그려진 정재는 동발(銅鈸)의 술이 양손 끝에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향발(響鈸: 옛날에 쓰던 타악기(打樂器)의 한 가지. 제금과 비슷하나 모양이 작고 가운데 구멍에 녹비 끈을 꿰고 또 오색(五色) 명주실(明紬-)의 술이 달렸음)로 짐작된다. 악대는 삭고(朔鼓)와 응고(應鼓), 건고(建鼓), 편종(編鐘), 편경(編磬), 어(敔), 축(柷) 등과 관현악기를 다루는 10명의 악공이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숭정전 갑자진연도」는 18세기에 치러진 진연, 특히 동시기 전형적인 외진연(外進宴)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또한 현전하는 궁중 연향도 중에서 병풍 그림으로는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며 3첩을 연결하여 한 장면을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이후 왜장식(倭裝式) 연폭 병풍의 유행을 알리는 사례로서도 중요하다.

참고문헌

『영조 대의 잔치 그림』(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국역 영조조 갑자진연의궤』(송방송 역, 민속원, 1998)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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