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에,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대한 추국을 맡았으나 역적을 동정한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문신.
개설
본관은 통주(通州). 자는 경중(敬中). 아버지는 김익한(金翼漢)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0년(선조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좌랑을 지낸 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이 모반에 실패하자 자결하였는데 그 이듬해 정여립을 추형(追刑)할 때 형조좌랑으로서 추국관(推鞫官)이 되었다. 그러나 추국을 하다가 지병으로 눈물이 흘렀는데, 적대관계에 있던 백유함(白惟咸)이 역적을 동정하여 운다고 무고하여 곤장을 맞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