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온의 묘소에는 묘비, 상석, 장명등, 문인석 등이 있으며, 묘소 뒤에는 조모 경주김씨의 묘소가 있다.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에 위치하며, 1987년 3월 3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의 본관은 영산(永山 또는 永同),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 또는 식우(拭疣)이다. 1441년(세종 23)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학사를 거쳐 호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이석형(李石亨)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학문적 명성을 다투었으며 『치평요람(治平要覽)』, 『의방유취(醫方類聚)』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을 정하는데 참여하였다. 고승(高僧)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불경에도 조예가 깊어 『석가보(釋迦譜)』를 증수(增修)하고, 『금강경(金剛經)』을 번역하였으며, 저서로는 『식우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묘역에는 호석(護石) 등의 장식을 꾸미지 않은 봉분 1기가 있고, 묘 앞에는 묘비, 상석, 장명등을 비롯하여 좌·우에 문인석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그의 묘소 뒤에는 할아버지 김종경(金宗敬)의 아내 경주김씨의 묘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묘역 주위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 없는데, 성종조에 세운 부조묘(不祧廟 :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계속 두면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한 사당)가 보은군 보은읍 지산리에 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