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 출신. 호는 유암(流暗). 1918년 3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시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줄곧 특대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시작품은 양적으로 극히 한정되지만, 『학지광』 5호에 실린 「산녀(山女)」를 비롯한 「한끗」·「잘짜」 등 몇 편의 시작품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에 뒤이어 현상윤(玄相允)·최소월(崔素月)·김안서(金岸曙) 등과 함께 주요한(朱耀翰)이 등장하기 이전, 1910년대 신체시단의 일원으로서 과도기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 시대로 보아 ‘산(山)'을 의인화한 시의 제목조차도 특이하지만, 그 전체의 표현기법도 고도하다. 당시의 시작들에 나타난 외형적 음수율이나 행련법의 제약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로부터 「불노리」에 이르는 한 과도기적 작품치고는 시적 구조, 곧 이미지와 은유는 물론, 시어구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자유시형에 가깝게 접근시키고 있다.
전대의 개화기 시가나 최남선과 이광수의 시작에 나타난 민중적 집단의식과는 달리 개아(個我)의 서정성을 시의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