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탄생지로 알려진 진천지역에는 김유신장군태실, 태령산성(胎靈山城), 연보정(蓮寶井), 김유신장군 탄생지, 길상사(吉祥祠), 사곡리장수굴(沙谷里將帥窟), 화랑벌, 병무관(兵武館), 쏠고개, 당고개, 말탄터 등 김유신과 관련된 사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김유신장군 탄생지와 태실 등 232,814㎡을 국가에서 1999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김유신장군탄생지는 ‘김유신장군유허지(金庾信將軍遺墟址)’라는 명칭으로 1988년 9월 30일에 충청북도기념물로, 김유신장군태실은 ‘김유신태실 및 돌담’이라는 명칭으로 1997년 6월 27일에 충청북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6월 11일에 이 둘이 합해져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김유신장군 탄생지는 진천읍 상계리 계양(桂陽)마을이다. 이곳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萬弩郡) 태수로 있을 때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한다. 그리고 큰 담을 쳤다하여 ‘담안밭(장군터·장수터)’이라 불리우고 있다. 또한 인근에 태실과 만노산성 등 신라시대의 유적이 있어 탄생지로 비정되는 곳이다.
현재 연보정의 서쪽인 완만한 평탄대지에 자연석을 이용해 3∼5열로 구축한 3단의 석축이 남아 있다. 연보정은 김서현이 만노군의 태수로 있을 때, 치소에서 사용하던 우물로 전하고 있다. 자연석으로 석축을 돌려 쌓았으며, 샘의 직경은 1.8m, 후면의 높은 쪽은 2.6m나 되는 곳도 있다. 특히 연보정은 4m정도 수로를 전면에 내고 있으며, 수로 좌우측에는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남아 있다. 이 우물은 김유신장군과의 관련뿐만 아니라, 축조방식이 자연석을 이용한 고식(古式)인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김유신장군 태실은 진천읍 상계리 뒷산인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다. 태실은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흙으로 덮은 봉분형의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이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했으며, 태령산 정상을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돌려 신령한 구역을 나타내고 있다. 즉 이곳 주위의 석축형태가 태아(胎兒)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산의 지세를 따랐다기보다는 신앙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김유신 장군과 관련해 신앙적인 면과 반월(半月) 형태인 것으로 고대 농경사회에 있어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한 곡령신앙(穀靈信仰)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현존하는 석축의 높이가 약 1.2∼1.8m이고, 직경 약 9m의 타원형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태실 중앙에 1986년도에 보수한 직경 3m, 높이 35㎝의 원형 석단이 있어 잔디를 씌워 놓았다.
태령산성은 김유신장군 탄생지 뒷편, 태령산(436m)에 있으며, 삼국시대나 고대의 변방 산성지들과 같이 성벽의 높이는 낮고 자연할석을 이용, 간략하게 축조하였다. 규모는 작고, 성내 면적이 매우 협착하며, 축조수법은 정교하지 못하다. 산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태아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둘레는 190m이며 높이는 1.2∼2m에 달해 산성(山城)이라기보다는 태실을 둘러싼 돌담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경사가 급한 동쪽을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축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산성이면서 아울러 태실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보호시설로서 기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