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겸

  • 예술·체육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
이칭
  • 극양(克讓)
  • 묵초(墨樵), 산초(山樵), 진재(眞宰)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775년(영조 5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소촌도 찰방
  • 주요 작품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 출생 연도1711년(숙종 37)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송희경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한국회화)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3일
장안사도 / 김윤겸 미디어 정보

장안사도 / 김윤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윤겸은 조선 후기에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이다. 안동 김씨 김창업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특히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등이 있다.

정의

조선 후기,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자는 극양(克讓)이고, 호는 진재(眞宰) · 묵초(墨樵) · 산초(山樵)이다. 김상헌(金尙憲)의 현손이며, 김창업(金昌業)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아들 김용행(金龍行)도 화원이다.

주요 활동

1760년(영조 36)에 종9품 전옥서 참봉(典獄署 參奉), 1762년(영조 38)에 전생서 봉사(典牲署 奉事), 같은 해 12월에 내담시 직장(內膽寺 直長), 1764년(영조 40)에 종6품 사재감 주부(司宰監 主簿)를 역임했다. 1765년(영조 41)에는 소촌도 찰방(召村道 察訪)이 되어 진주로 내려갔다.

강세황(姜世晃), 불염재(不染齋) 김희성(金喜誠) 등의 동시대 문인화가들과 그림을 감상하거나 화평을 나누었고, 남유용(南有容), 심환지(沈煥之) 등의 수응화(酬應畵)를 그렸다.

김윤겸은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충청도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남겼다. 김희성의 가전 화첩인 『불염재주인진적첩(不染齋主人眞籍帖)』에는 정선 그림에 평한 김윤겸의 글이 발견되어 그가 정선의 화법에 영향을 받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경상남도의 명소들을 그린 장면으로 장첩된 『영남기행화첩(嶺南紀行畵帖)』은 50세 이후 김윤겸이 습득하고 익힌 화법이 엿보이는 화첩이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동산계정도(東山溪亭圖)」,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강산화첩(金剛山畵帖)』, 『진경산수화첩(眞景山水畵帖)』, 「총수산도(蔥秀山圖)」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 원전

  • - 『자저(自著)』

  • 단행본

  • -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논문

  • - 김시우, 「진재 김윤겸의 《영남기행화첩》 연구」(홍익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23)

  • - 이태호, 「진재 김윤겸의 소촌찰방 시절 한글편지와 사생행적 재검토」(『미술사와 문화유산』 7,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2018)

  • - 이다홍, 「진재 김윤겸(1711-1775)의 회화 연구」(홍익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9)

  • - 이현주,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진재 김윤겸의 「영남기행화첩」」(『문물연구』 7,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200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