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2년(헌강왕 8)에 당나라에 입조사(入朝使)로 갔으나, 황소(黃巢)의 난으로 길이 막혀 초주(楚州: 지금의 江蘇省 淮安縣)에 상륙하여 양주(揚州: 지금의 江蘇省 揚州)에 이르러 당나라 희종(僖宗)이 촉(蜀: 지금의 四川省)으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고병(高騈)이 보낸 도두(都頭)장검(張儉)의 감시 압송을 받아 서천(西川: 지금의 四川省 서부)에 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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