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섭 ()

오남문집
오남문집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통화변답, 「농정신서서조변」, 『오남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오남(吾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8년(헌종 4)
사망 연도
1894년(고종 31)
본관
영광(靈光)
출생지
전라남도 장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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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통화변답, 「농정신서서조변」, 『오남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영광(靈光), 호는 오남(吾南). 아버지는 김노현(金魯鉉),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 윤상열(尹商說)의 딸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이항로가 죽은 뒤에 다시 임헌회(任憲晦)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학문이 성취된 뒤엔 고향인 장흥(長興)과 금릉(金陵, 강진 별호)의 대명동(大明洞)에서 서당을 열고 후진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1877년에 강진군 월각산(月角山) 밑 대명동으로 이주했으며, 1882년에 그의 둘째 아들 김봉식(金鳳植)을 지도(智島)로 보내어 김평묵(金平默)을 찾아가 공부하게 하였다.

또 1883년엔 그의 스승 임헌회의 문집인 『고산문집(鼓山文集)』 간행을 위하여 오랫동안 고창(高敞)에 있었다. 「삼극도설(三極圖說)」·「유석심학부동변(儒釋心學不同辨)」·「일감문답(一鑑問答)」 등 성리학적 논저와 「벽사설(闢邪說)」·「통화변답(通貨辨答)」·「농정신서서조변(農政新書序條辨)」 등 정치적 견해를 담은 논문도 있다.

대체로 명덕주기설(明德主氣說)·성즉리심즉기설(性卽理心卽氣說)·성위심재설(性爲心宰說) 등을 반대하고 명덕은 이(理)가 주(主)이며, 심(心)은 이와 기의 합이며, 심은 몸의 주재자라는 견해를 주장한 것이 그의 성리학적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저서로는 『오남문집(吾南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오남문집(吾南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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