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이다.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김함은 임진왜란 시 전사하여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유물은 장옷 3점,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누비무명버선 1쌍 등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토 의복은 출토 복식 연구 초기에 발견된 자료로서, 특히 의리장의 장속(葬俗)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정의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金涵: 1568∼1598)의 묘(墓)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
개설
내용
저고리는 2점이 출토되었는데 1점은 무명이고 1점은 면주로 만들었다. 모두 아청색이 남아있으며 목판깃이 섶에서 반쯤 들여서 달려 있으며 화장에 비해 품이 상당히 넉넉하며 옆트임이 없고 겨드랑이 아래 옆선은 한쪽 무로 구성되었다. 무명저고리는 뒷길이 59cm, 화장 83cm, 뒷품 83cm이다. 소색 세주로 만든 동정이 달려 있다. 나머지 면주 솜저고리는 현재 깃, 동정 끝동이 탈락되어 없으며 솜이 밖으로 내보이는 형태로 남아 있다.
바지는 2점이 출토되었는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당시 각각 ‘속곳’과 ‘내친고’로 등재되었다. 완형의 삼베 바지는 홑옷으로 길이가 83㎝, 바지 부리 68㎝이다. 바지 부리가 넓은 너른바지 형태로 정삼각형의 밑바대가 붙어있는 밑 막힌 바지이다. 옆선에 트임을 주었으며 90×5㎝의 고름이 달려 있다. 솜누비바지는 면(綿)으로 만들었으며 밑 트인 바지 부리 한쪽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소실되어 없는 상태이다.
그밖에 소모자, 무명 누비버선 1쌍, 부들신(명주실이나 무명실을 꼬아서 매듭지은 실로 엮은 신) 1쌍, 이불 1점, 구슬(珠) 1점, 제웅 5점 등이 있다. 모자는 소모자 또는 감투로 불리던 것으로 겉감은 아청색 무문단(無紋段)이며 안감은 소색 명주로 만들었다. 상단은 여섯 개의 삼각형 천을 이었으며 하단에는 일자로 대륜을 두른 육합모 형식이며 높이 19㎝, 지름 33㎝이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는 소털이 2㎝ 정도의 두께로 넣어져 있다. 모자의 정수리에는 매듭단추가 달려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2-복식·자수편-(문화재청 편, 2006)
- 『다시 태어난 우리옷 환생』(서울역사박물관·단국대석주선기념박물관 편, 2006)
- 『송자대전(宋子大全)』(송시열, 1787)
- 「임진왜란 이전 남녀복식의 조형적 특징」(박성실, 『한국복식』24, 단국대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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