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방법원 서기를 지내다가 판사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고 시를 발표,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가 결성될 때 그 동맹원이 되었다.
그러나 1927년 「계급예술논의의 신전개(新展開)」에서 그는, 공산주의자가 그의 인생관이나 사회관에 입각하여 무산계급 문예를 수립할 수 있다면 아나키즘 또한 그의 사상적 견지에서 무산계급예술론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아나키즘과 볼셰비즘이 각각 다른 체계라는 견해를 펴 카프의 목적의식을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조중곤(趙重滾)·윤기정(尹基鼎)·임화(林和)·한설야(韓雪野)·박영희(朴英熙) 등이 반론을 펴는 등 프로문학 내부의 논쟁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김팔봉(金八峰)의 형식론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김화산은 프로문학도 예술인 바에야 예술로서의 본질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그는 카프의 조직적·집단적 세력에 눌려 제명되었으나, 그의 비평은 무산계급의식을 고조하면서도 예술의 독자성을 주장하여 프로문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뇌동성(雷同性) 문학론의 극복」(1927)·「마르크스주의의 문학론 음미(吟味)」(1933) 등의 평론과, 「4월도상(四月途上)」(1930)·「9월우일(九月雨日)」(1931) 등의 시가 있다. 말년의 행적 및 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