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파지(波知, 또는 分沙)였는데, 663년 당나라 치하에서 분차주(分嵯州)로 고치고 귀단(貴旦)ㆍ고서(皐西)ㆍ수원(首原)ㆍ군지(軍支) 등의 현을 관할하였다. 757년(경덕왕 16) 분령군(分嶺郡)으로 고치고 강원(薑原)ㆍ백주(栢舟)ㆍ충렬(忠烈)ㆍ조양(兆陽)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낙안군(또는 陽岳)으로 고치고 나주에 소속시켰다. 1172년(명종 2) 감무관(監務官)으로 독립 고을이 되었으며, 뒤에 감무가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66년(세조 12) 군수로 바뀌었고 장흥에 속하였다가 뒤에 순천에 속하였다.
1515년(중종 10) 한 군인(郡人)이 그 어미를 죽인 죄에 대한 벌로 현령관(縣令官)으로 격하되었다가 곧 복구되었으며, 1555년(명종 10) 한 사노(私奴)가 그 주인을 죽인 죄의 벌로 현감관(縣監官)으로 격하되었다가 1575년(선조 8)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 나주부, 1896년 전라남도에 속하였고, 1909년 군을 폐하고 일부는 순천군, 나머지는 보성군에 병합되었다. 1909년 순천군에 편입되어 낙안면이 되었으며, 1949년 순천군이 승주군으로 개칭되고, 1995년 승주군과 순천시가 통합되어 순천시에 속하게 되었다.
읍치는 본래 벌교읍 고읍리에 있었는데 고려 말에 현 위치로 옮겨졌다. 관내에 낙승역(洛昇驛), 개운산봉수(開雲山烽燧), 지주도(蜘蛛島), 장도목장(獐島牧場), 장암포염소(場巖浦鹽所), 직석포선소(直石浦船所)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