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초기에는 내포현(奈浦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난포현으로 고쳐 남해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입으로 고을이 폐허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 곤남현(昆南縣)의 속현이었으나 남해현(南海縣)과 곤양현(昆陽縣)이 분리되면서 남해현의 관할이 되었다.
난포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었던 곳으로 조선 말기까지 주변의 곡포(曲浦)ㆍ우현(牛峴)ㆍ성현(成峴) 등지에는 성곽이 있었다. 난포 남쪽의 금산(錦山, 658m)은 남해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산봉우리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서북쪽의 원산봉수(猿山烽燧)로 연결되어 좌수영에 직접 전달되었다.
교통상으로는 남해에서 미조항(彌助項)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하였으나 부근에 역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로를 통하여 다른 지역과의 연결이 빈번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난포 동쪽 20리 지점에 어항이 있다고 기록된 점으로 보아, 해군기지ㆍ어항 등의 성격을 가졌던 곳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이동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