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광개토왕 10) 후연(後燕)의 모용희(慕容熙)의 침공으로 한때 신성(新城)과 함께 빼앗겼다. 이 때 국경지방 700여 리를 잃었으나 402년에 다시 탈환한 고구려의 북서지방 요충지이다.
666년(보장왕 25)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장남 남생(南生)이 남소ㆍ목저(木底)ㆍ창암(蒼巖) 등 3성을 들어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에게 항복하였으며, 이 싸움에서 고구려 군사 5만이 죽었다. 고구려 영토 중 압록강 이북에서 항복한 11개 성의 하나로 고구려 패망 후 안동도호부에 예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