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현종 10)에 대성전을, 1678년(숙종 4)에 명륜당을 중수하고 그 후 1892년(고종 29)에 대성전을, 1917년에 명륜당을 지금 자리에 옮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17년 4월 명륜당과 그밖의 부속건물을 옮겨왔고, 1982년 홍살문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서문(西門)·관리사(管理舍)·홍살문·고자가(庫子家)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 등이 위치하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 등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남해향교 건물의 배치는 전형적이나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것은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 가운데 《교궁선생안 校宮先生案》·《선생안 先生案》·《원생외안 院生外案》·《원생안》·《유안 儒案》·《유림별안 儒林別案》·《청금록 靑衿錄》 등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