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걸(李廷傑)의 편서로 노서(魯西)와 회덕(懷德)의 관계, 즉 윤선거(尹宣擧)와 송시열(宋時烈)의 관계를 파헤친 것이다.
6권 2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에 있다.
강도편(江都篇)·여윤편(驪尹篇)·교제편(交際篇)·갈문편(碣文篇)·의서편(擬書篇)·사제편(師弟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도편」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피란을 주축으로 주위의 사정을 설명하고 뒤에 말썽이 된 윤선거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그 부인은 자결해서 죽었으나 윤선거만이 홀로 살아서 돌아왔다는 논란에 대해 살아올 수 있었던 내막과 살지 않으면 안 될 이유들을 열거해 여러 사람과의 서신·상소·일기 등을 토대로 증명한 것이다.
「여윤편」은 윤휴(尹鑴)와 송시열·윤선거·이유태(李惟泰)·윤선도(尹善道) 등의 관계를 다룬 것이다. 송시열과 윤선거의 관계 악화는 윤휴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윤휴가 선현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고 주자(朱子)의 주해를 틀렸다고 지적하며 『중용』의 구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등 그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송시열이 윤선거에게 윤휴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자, 처음에는 승낙을 했다가 나중에 뜻을 바꾸어 송시열의 말을 듣지 않은 데서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교제편」은 그들과 교제한 사람들의 서신을 종합해서 그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이 글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거론되는데, 이유태·조복양(趙復陽)·김익겸(金益兼)·김상용(金尙容)·유계(兪棨)·권시(權諰)·권상하(權尙夏)·박세채(朴世采) 등이 있고, 그들과 주고받은 서한이 인용되어 있다.
「의서편」에서는 윤선거가 죽은 뒤에 윤선거의 묘갈을 박세채가 쓰게 되었는데, 초안을 작성해 송시열에게 교열을 청하자 글귀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지적하며 삭제를 지시했으나 박세채는 송시열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을 내세워 양가의 이론이 더욱 대립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사제편」에서는 윤선거의 아들 윤증이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운 것으로 사람들은 알지만, 실제로는 가학을 전수받은 것이고, 송시열로부터는 경서의 몇 구절만 질의했을 뿐이라고 사제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이 책은 노소당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