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때의 지명은 이릉부리(爾陵夫里, 또는 竹樹夫里,仁夫里)였으며, 757년(경덕왕 16) 능성(陵城)으로 고치고 부리현(富里縣: 지금의 보성 복내)과 여미현(汝湄縣: 지금의 화순)을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능성(綾城)으로 바뀌고 뒤에 나주목의 임내(任內)에 속하였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관(縣令官)이 되고 나주목에 속했던 철야현(鐵冶縣)·도민부곡(道民部曲)·운곡소(雲谷所)·품평소(品坪所)가 그 임내로 편입되었다.
1415년(태종 15) 철야현·도민부곡·운곡소가 남평현에 이속되고, 이듬해 화순현이 병합되어 순성(順城)으로 개칭되었다가 1418년 화순이 분리되면서 다시 능성이 되었다. 1594년(선조 27) 화순현이 또 병합되었다가 1611년(광해군 3) 분리되었다.
1632년(인조 10)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의 고향이라 하여 능주목으로 승격되었고, 1641년 토포영(討捕營)이 설치되었다가 1664년(현종 5) 나주 우영(右營)에 이전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이 되어 나주부에 속하였고 이듬해 전라남도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순군에 병합되어 능주면이 되었다.
능주 북쪽은 화순·광주로 이어지고, 남쪽은 인물역(仁物驛)을 통하여 장흥을 지나 남해안에 다다르며, 동서로는 동복(同福)·나주와 이어지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유적으로는 조광조(趙光祖)를 모신 죽수서원(竹樹書院), 최경회(崔慶會)를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