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영은 우리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동요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아회를 통해 어린이들을 결집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데 노력하였다. 그는 먼저 매년 1월 1일이면 어린이들이 마땅한 노래가 없어 일본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인 설날에 빚어지는 일들을 노래한 「설날」을 작사하였다.
그 뒤 「반달」을 작사, 작곡하여 10여 곡의 악보를 인쇄해서 서울의 각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우송하였다. 다리아회의 소녀 합창단을 결성하여 「반달」을 부르게 하였다. 이렇게 퍼진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에 전파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다리아회에서 보급한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되었다.
당시 일제에 의하여 학교에서 우리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일시에 전국적인 호응을 얻은 이 노래들에 대해서는 금지를 해제하기도 하였다.
이 회에서는 또한 1925년 3월 내청각(來靑閣)에서 창가극 「파랑새를 찾아서」를 공연하였다. 이 창가극은 벨기에의 희곡동화 「파랑새」를 각색한 것으로, 번역은 박팔양(朴八陽)이 맡고 곡은 윤극영이 붙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윤극영 중심의 동요보급단체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발전되어 예술적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아동극연구까지 담당하였다.
회원 또는 후원자는 윤극영을 비롯하여 안석영(安夕影) · 심훈(沈熏) · 이서구(李瑞求) · 김병조(金秉兆) · 임병설(林炳卨) · 안석주(安碩柱) · 윤갑숙(尹甲淑) · 김기진(金基鎭) · 윤병섭(尹秉燮)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