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년 진흥왕이 함경도 지방을 순수하고 세운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狩碑)」와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黃草嶺新羅眞興王巡狩碑)」에 보인다. 이에 의하면 이내객(裏內客)과 함께 50인이 차출되어 진흥왕을 수가(隨駕)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급 신료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구체적인 직명(職名)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근위직(近衛職) 내지는 그와 관련된 수가(隨駕) 중 제반 잡역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래객(堂來客)의 ‘당(堂)’이란 국왕의 정청으로서의 조당(朝堂)·도당(都堂) 혹은 남당(南堂) 등을 지칭하는 것이겠고, ‘래(來)’란 진흥왕을 수가해 왔다는 것을 의미하겠으며, ‘객(客)’은 협객(俠客)·자객(刺客)·검객(劍客) 등의 용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무사집단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또, 당래객은 이내객과 더불어 모두 50인으로 기록되어 계획적으로 동원된 인원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따라서 당래객은 당시 함경도 지방을 순수하기 위해서 떠나는 진흥왕을 호위하기 위하여 국왕 정청의 위병 중에서 차출한 무사집단으로 볼 수 있다.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에는 특히 다른 순수비에는 보이지 않는 사문도인(沙門道人)·집가인(執駕人)·이내종인(裏內從人)·유인(卣人)·약사(藥師)·내나부통전(奈夫通典)·급벌참전(及伐斬典)·당래객(堂來客)·이내객(裏內客)·외객(外客)·조인(助人) 등 많은 관직 이름이 보이고 있어 신라의 정치제도, 특히 국왕의 종자제도(從者制度)를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금석문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