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 대구공립상업학교로 설립하여 대구중학교 가교사(假校舍)에서 개교식을 가졌다. 당시 상공 도시의 면모를 갖춘 대구광역시의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인한 상업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9월중구 대봉동의 신축 교사로 이전하였다.
수업연한 5년에 10개 학급으로 편성되었으며, 입학생 정원 100명 가운데 한국인 50명과 일본인 50명이 입학하여 1928년 3월 52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교육과정은 수신·국어·수학·지리·역사·이과·영어·법제·경제·상업요항·부기·상품·상업실천·도화·체조 등이었다.
1942년 5월 조국이 일제하에서 신음하던 때 당시 대구 상업학교 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비밀단체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구국투쟁을 전개한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조국광복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인 행동강령을 가지고 이상호 단장을 비롯한 26명의 단원들이 1년여 동안 계획한 무장 항일투쟁을 준비하였고, 1943년 5월 23일 태극단장 이상호가 체포되고, 5월 25일과 27일에 단원 25명 전원이 체포되었으며, 이중 16명이 석방되고 6명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아 희생되었다.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은 대구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의 항일정신과 맥을 같이하여, 1920년대 광주학생의거와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학생독립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후 초대 교장에 이종림(李鍾林)이 취임하였으며, 1946년 9월 6년제 대구공립상업중학교로 개편하고, 야간 학교인 대구공립실무전수학교를 인수하여 야간부를 두었다.
1951년 9월 교명을 대구상업고등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72년 11월 주간부 36학급, 야간부 15학급을 설치하였다.
1984년 9월 신축교사인 달서구 상인동으로 이전하였고, 1998년 12월 교명을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로 개명하게 되었다. 2003년 10월 실업계(상업계)를 일반계로 계열 전환과 더불어 교명을 대구 상원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 그 해 제84회 전국체육대회 럭비부가 3년 연속 우승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전국 종별 테니스대회 복식 우승을 하였으며, 같은 해 제27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하였다.
2008년, 2009년 연속 학력향상 우수학교로 선정되었으며, 2009년에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같은 해 10월 제90회 전국체전 고등부 야구에서 우승하는 등 각종대회에서 두서의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 2월 제82회 졸업식을 가졌으며, 총 졸업생 수는 4만 2,530여명을 배출하였다. 2010년 3월 현재 41개 학급에 재학생 1,591명에 교직원은 106명이다.
‘푸른 꿈을 안고 오늘도 힘차게’라는 교훈 아래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 유능한 사람, 건강한 사람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전통적인 행사로는 매년 종합예술제와 체육대회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설립 당시부터 창설된 야구부·럭비부는 현재까지 존속하여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으며, 2008, 2009년 연속 학력향상 우수학교로 선정되었고, 야구부는 2009년 전국대회 2회 우승(전국체전, 대붕기), 1회 준우승(대통령배), 2010년 전국대회 1회 우승(대붕기), 럭비부 2010년 전국대회 1회 우승(충무기)하였다.
매년 교지 “상원”, 영자신문과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우수 동아리 활동으로는 적십자반(RCY), 영자신문반, 교지편집반, 방송반(TCBS), 도서반(마리서사), 문예반(소라문학), 미술반, 영화감상반(비극), 관악반, 웰빙반(Cham), 뮤지컬반(뮤즈)등을 통해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신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