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전문학교 ()

단체
1907년 대동학회(大東學會, 후에 孔子敎로 개칭)가 한성에 설립한 사립전문학교.
이칭
이칭
공자교(孔子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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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7년 대동학회(大東學會, 후에 孔子敎로 개칭)가 한성에 설립한 사립전문학교.
연원 및 변천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면서 반일 여론이 급등하고 유림의 조직적인 반발이 가시화되자, 일본은 유림계를 친일화 시키려는 의도에 따라 이완용(李完用)·조중응(趙重應) 등 친일파를 내세워 대동학회를 설립하였다.

대동학회는 1908년 2월에 대동전문학교를 한성에 설립하고, 같은 해 3월에 학생을 모집하여 법률과 정치학을 야간과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08년 5월 3일 대동전문학교는 성균관 비천당에서 고종 황제가 친히 관람하는 가운데 ‘운동식’을 열기도 하였다.

기능과 역할

대동전문학교는 3년제의 전문과와 1년 과정의 속성과를 개설하고, 20세 이상 된 남자를 대상으로 내외국지지역사, 국한문의 독서와 작문, 산술(4칙 이내) 등으로 입학시험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관공사립보통학교 이상의 학교 졸업증서가 있는 자는 시험을 면하고 입학하도록 하였다.

학년별 학과목을 보면 1학년의 학과목이 법학통론·민법총론·물권법채권법·상법총론·형법총론·경제학·내외국역사·한문·산술·외국어학 등이다. 2학년에서는 국가학·채권법·회사법·상행위법·형법각론·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행정학·정치원론·재정학·부기학·한문·외국어학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3학년의 교과목은 헌법·해상법·민사소송법·국제공법·국제사법·명률(明律)·통계학·조세론·한문·외국어학·실지연습 등이다. 1908년 3월 16일에 실시된 대동전문학교의 신입생 모집을 위한 시험에는 응시자가 300여 명에 달하였다.

대동전문학교는 1909년 4월에 실시한 제2회 신입생 모집 때부터 관립 고등학교나 이와 동등한 학교의 졸업증서를 가진 자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시켰다. 대동전문학교는 1909년 4월에 1년 과정인 속성과의 제1회 졸업시험을 실시하여 50명의 첫 졸업자를 배출하였다.

참고문헌

『한국 개화기의 교육』(김영우, 교육과학사, 1997)
「한말(韓末)의 사립학교(私立學校)에 관(關)한 연구(硏究)」Ⅱ(김영우, 『교육연구(敎育硏究)』3, 공주사범대학 교육연구소, 1986)
『황성신문』(1905.5.2, 1907.3.15, 1908.2.23, 1908.3.17, 1909.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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