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개념
중등교육기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고등교육의 핵심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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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등교육기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고등교육의 핵심 교육기관.
개설

공교육의 수준을 연령에 따라 취학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단계로 구분하였을 경우 가장 높은 단계인 고등교육의 핵심 교육기관이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고등교육 기관을 기능과 목적에 따라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원격대학(방송대학·통신대학·방송통신대학 및 사이버대학), 기술대학, 각종학교로 구분한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명시한다.

또한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 또는 법령에 의하여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를 대상으로 하며, 4-6년제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수업연한이 2-3년제인 전문대학을 제외한 모든 고등교육기관을 대학으로 통칭하기도 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4-6년제 종합대학의 학부과정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의 수업연한은 4년이나 의학과, 한의학과, 치의학과, 수의학과, 약학대학은 예과(豫科) 2년을 포함하여 6년이다. 대학에는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을 설치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의 장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 대학별 고사의 성적과 자기소개서 등 교과 성적 외의 자료 등을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동서양에 따라 대학의 기원은 크게 다르다. 우리가 ‘근대’ 고등교육이라고 할 때 근대 대학은 곧 서양 대학이다. 서양 대학은 12세기 프랑스의 파리 시 자유교과인 문법, 논리학, 수사학 등 고전 인문학자가 동업조합을 결성한 것에서 시작한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법학 전공 학생들이 별도 학생조합을 조직하였다. 여러 직종 장인이 집단이익을 지키려는 동업조합인 길드를 대학(universitas)이라고 하였다.

학자나 학생 길드에서 출발한 대학은 기독교로부터 독립되어 세속학문을 추구하였고, 성직자나 의사와 법관 양성을 준비하기 위해 고전 인문교과를 가르쳤다. 대학의 학사 조직을 학부(Faculty)라 하였고 교양학부(Arts Faculty)와 고등 직업교육기관인 의학부, 법학부, 신학부 등 4개 학부로 구성되었다. 19세기 들어 전자는 중등교육으로 후자는 고등교육으로 분화된다. 자연과학 학부가 새로 추가되었다.

중세 대학의 교육 기능에 연구 기능이 추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근대 대학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세기 초 독일에서였다. ‘근대 대학의 아버지’로까지 높게 추앙을 받는 훔볼트는 종래 교육 기능에 국한된 독일 대학에 연구 기능을 추가하였다. 미국에 이식된 독일형 연구대학은 20세기 이후 산업발전에 따라 사회봉사기능이 추가되어 종합대학교로 진화 하였다.

대학의 3대 기능인 교육, 연구, 봉사는 천 년여 긴 시간 동안 진화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다. 미국 사립 명문과 토지공여 대학인 주립대학이 점차 연구를 통한 국가사회발전을 강조하자 연구중심대학이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였다.

독일 대학에서는 최고 수준 교육을 위해 교육과 연구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형태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경제발전에 직접 공헌하는 연구를 강조하여 연구-봉사가 통합된 형태이다. 최근 후자를 세계수준 연구대학이라 하고 있다. 지식경제사회라는 글러벌시대에서 연구중심대학은 개별 국가는 물론 세계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이 새로 부여되었다.

미국 연구대학은, 종래 신사양성을 위한 전통적인 칼리지로부터 탈피하고, 그간 관심 밖에 있었던 학문 영역을 포괄 하였다. 자연과학·응용과학·사회과학 등 실용 교과를 도입하고, 의학과 법학, 교육 분야 전문대학원을 설립하여 급성장하였다.

우리나라 대학의 발달

기관에 초점을 두면, 우리나라 대학 시작은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 설립된 태학(서기전 372년)이다. 귀족의 자제를 대상으로 유학의 경전과 무예 등을 가르쳤다. 그 뒤 통일신라의 682년(신문왕 2)에는 국학(國學)을 설립하였고, 992년(고려 성종 11)에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은 신라의 국학과 함께 유교에 의한 관리양성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는 정치적·문화적 지도자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성균관(成均館)이 있었다.

서양의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대학과 달리, 성균관은 학자 양성 기관이 아니라 소과(小科) 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연수기관 또는 대과(大科) 시험 예비 기관이다. 즉 개화기 이전의 전통적 대학은 유학 지식인 양성을 위한 기관이다. 서양 대학과는 달리 덜 형식화되고 덜 기관화된 상태에서 탁월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지적 교류가 고등학문 발달의 근강이었다. 서양 대학이 스콜라 철학의 묘판이었다면, 조선 왕조 사제관계는 성리학 오나성의 근간이었다.

개화기에는 종전과 달리 각종 직업 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1880년대 정부가 설립한 신식 또는 서양식 전문학교의 주요 특징은 기술관료 양성과정이었다. 군사, 외교, 통상, 의료, 법률, 교육 등 전문 분야에 우선하였고 이어 농업, 전기, 통신, 광산개발과 같은 산업기술 분야에도 관심을 보였다. 군사과학과 프랑스식 전술훈련을 실시한 별기군(別技軍, 1881년)을 시작으로 국방력 강화를 위하여 연무공원(鍊武公院, 1888년), 사관학교(1896년)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외국과의 교섭에서 중요한 영어 연수를 위하여 동문학(同文學, 1882년), 육영공원(育英公院, 1886년)이 설립되었다.

또한 교사, 법관, 의사 양성을 위하여 1895년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1895년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1899년 의학교(醫學校)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농업, 상업, 공업 분야 산업기술자 양성을 위하여 농무학원(農務學院, 1887년), 상공학교(商工學校, 1899년)를 설립하였고, 통신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무학당(電務學堂, 1898년)과 우무학당(郵務學堂, 1898년)을 설립하였다. 이외에도 광무학당(鑛務學堂, 1900년)을 설치하여 광산기술자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업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시도는 국내 산업과 연계되지 못하고, 고용된 외국 교관 또한 기술 훈련보다는 이권 개입에 주된 관심을 보여 원래 구상대로 기술자 양성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에는 강제 폐교와 통합, 그리고 전문학교 수준으로 격하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민간 영역에서는 중등수준으로 출발한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 1885년),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년), 숭실학당(崇實學堂, 1897년), 연희전문학교(1915년) 등을 비롯하여, 비 종교계 사립학교인 보성전문학교(1905년)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립학교들은 일제강점기, 사립학교 탄압과 고등교육 억제정책으로 인하여, 대학 수준의 학교로 발전하지 못하고 전문학교에 머물렀다. 광복 이후 점차 확대 발전하여 현재의 사립대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개화기 이후부터 근대적인 전문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해 온 대학교육은 일제의 사립학교 탄압정책과 고등교육 억제정책으로 매우 더디게 성장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 정부는 기존 학교의 폐교와 격하, 그리고 엄격한 인가 기준을 잣대로 대학의 신설을 제한했다.

이로 인해 1945년 여름 고등교육기관의 수는 유일한 대학인 경성제국대학과 20여 개 공사립 전문학교에 불과했다. 게다가 유일한 서양식 연구대학인 경성제국대학(1924년)은 일제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식민지 관리를 현지에서 양성하기 위해서 설립한 기관이다. 일제강점기의 극도로 제한된 대학 교육 기회는 광복 이후 급속한 동시 보편화의 에너지로 작용한다.

광복 이후 경성제국대학과 서울 시내 관립전문학교를 통합한 국립서울대학교가 탄생했고, 일제의 탄압에 의해서 전문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던 사립학교들은 대학으로 인가를 받기 시작한다. 미군정의 자료에 따르면, 1947년까지 인가 받은 대학은 국공립대학 8개교, 사립대학이 12개교로 모두 20개 대학이 존재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1965년 국공립대학 14개교, 사립대학 56개교였던 대학은 2009년 4월 현재 국공립 26개교, 사립 151개 교로 모두 177개교로 증가하였다. 대학 교육의 확대는 주로 사립대학의 신설과 정원 확대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동시 보편화는 사립학교의 신설과 정원 확대를 통해서 이루어진 측면이 강하다. 1965년 국공립 대학의 취학률은 1.4%, 사립대학은 4.2%를 점하였다. 그리고 2008년에는 국공립 대학 16.6%, 사립대학 61.9%로 증가하였다. 전체 고등교육 취학률이 상승했던 시기에 사립대학의 취학률이 매우 가파르게 상승했고, 언제나 국공립 대학의 취학률을 앞지르고 있다.

현황

2009년 4월 현재 대학은 177개교이며, 이 중 국립 24개교, 공립 2개교, 사립은 151개교이다. 재적 학생수는 198만 4043명이고, 국립 39만 7244명, 공립 2만 3700명, 사립 156만 3099명이 재적하고 있다. 대학교 전체 취학률은 79.2%이며, 이 중에서 국공립 취학률이 16.8%, 사립대학 취학률이 62.4%이다.

이와 같이 설립운영 주체로 구분하였을 때, 대학의 대부분은 사립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의 85.3%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에는 기존에 있던 원격대학 11개교가 사이버대학으로 인가되고, 1개교가 신규로 설립됨에 따라 사이버대학 학제가 추가되었다.

지역별로 볼 때, 1985년 전체 대학의 20% 이상이 서울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학 신설이 서울 이외의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서울의 비중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학교의 변화 추이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경기도는 1985년 9개에서 2009년 27개로 3배 증가하였고, 경상북도는 4개에서 18개로 4.5배 증가하였다.

학생수 또한 비슷한 증가 규모를 보인다. 지방 대학 신설로 인해 지역 편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전체 177개 대학의 20.9%인 37개 대학이 서울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인천 4개교, 경기 지역의 27개교를 포함하면, 전체 대학의 38.4%가 수도권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 지역은 대학 신설이 억제되어 학교가 불과 2개교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수는 30만 8763명에서 44만 7982명으로 약 1.5배 증가하였다. 서울 지역에 있는 기존 대학이 꾸준한 정원 확대를 통하여 몸집을 부풀려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울 지역의 국공립 대학교 KAIST(서울캠퍼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육군사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가운데 일반 종합대학은 국립인 서울대학교와 시립인 서울시립대학교 단 두 곳에 불과하다는 점에 미루어,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정원 확대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계열별로 볼 때 2009년 현재 인문계열 26만 1171명, 사회계열 59만 9485명, 교육계열 8만 6215명, 공학계열 51만 8975명, 자연계열 23만 8604명, 의약계열 7만 2372명, 예체능계열 20만 7221명이다. 학생수의 증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인문사회계열과 의약계열에서 사립의 비중 확대이다.

인문사회계열은 1985년 40만 7879명에서 2009년 86만 656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사립의 비중은 79%에서 84.8%로 증가하였다. 학생 수가 비슷한 자연공학계열의 경우, 국공립과 사립의 비중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변화는 매우 특징적이다. 그리고 의약계열은 1985년 전체 3만 9408명 중에 64.7%가 사립에 재학하고 있었으나, 2009년에는 7만 2372명 중의 89.1%인 6만 4491명이 사립대학에 재학 중이다.

이와 같이 동시 보편화는 사립학교의 신설과 정원 확대를 통해서 이루어진 측면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교육비의 증가를 수반한다. 그러나 급속하게 늘어나는 고등교육 취학률 상승률과 고등교육 재정 규모의 증가율 사이에는 엇박자 현상이 나타난다.

취학률은 지난 35년 동안 무려 14배나 증가했지만, 고등교육 재정은 불과 3.5배 증가하는데 머물고 있다. 고등교육 재정이 취학률 증가 속도를 따라가고 있지 못함을 의미하며, 이 사실은 정부 공공투자 덕에 고등교육 기회가 확대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정부투자 없이 증가된 취학률은 결국 유상 고등교육의 팽창임을 뜻한다.

빈약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국제 비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 비교를 위해 OECD의 자료와 교차 검증을 하면, 2006년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 중 사부담 비율은 76.9%이다. 전체 OECD 회원국가 중 1위를 차지했고, 2위인 일본의 67.8%보다 약 9.1%나 높은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또한 OECD 국가 평균인 27.4%보다는 두 배를 훨씬 넘는다. 고등교육 재정의 사부담 비율이 50%를 넘어서는 국가는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을 제외하고는 미국, 일본, 호주뿐이다. 구성비에 근거하면 국제적으로 한국의 유상 고등교육은 가장 선도적 사례이다. 국제비교에서도 고등교육의 민영화와 같은 유상 보편화가 가장 주목할 현상이다.

의의와 평가

한국 대학은 매우 짧은 시간에 양과 질에서 경이롭게 발전하였다. 외국 국제 고등교육 전문가는 우리 대학의 그와 같은 발전을 모두 흠모와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단 시일 내 교육기회의 보편화가 중등과 고등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 졌다. ‘동시 보편화’라는 이 현상은 세계 근대 국민교육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다. 현재 고교 졸업생이 어떤 형태로든 고등교육 기관으로 진학하는 비율은 81%로 세계 최고 비율을 기록하였다.

매우 짧은 기간에 이룬 놀라운 고등교육의 팽창으로 팽창 보다 ‘폭발’이란 용어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 그러나 한국 고등교육의 동시 보편화 규모와 속도는 정부의 재정 부담 능력과 의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대학 교육의 기회는 사립대학의 신설과 정원 확대를 통해서 가능했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은 공공재로서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과도하게 사립 영역에 의존하면서 보편화 단계로 이행했다. 대학 교육의 보편화는 중앙 정부의 합리적인 계획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대학 교육을 받게 하려는 학부모들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가능했다.

한국 대학은 중등 이후 교육에 대한 시민의 폭발적 요구를 주로 민영화 형태로 수용하게 되었기에 하나의 시스템을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대학 교육의 80%를 사학 기관과 학부모 재정 부담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하나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매우 어렵다. 교육기회 폭발 전에 이해당사자 요구를 반영하는 합리적 종합발전계획을 가지기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연구중심 대학, 교육중심 대학, 직업훈련 대학 간의 확연한 기능구분이 필요하다.

개별 교육기관은 각기 존재이유에 맞도록 재정 확보, 교육과정 편성, 교수 충원, 입학생 선발 방법을 따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체계 내 기능 구분은 교수나 학생과 같은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나 학교라는 기관에는 엄격하게 적용하여야 한다. 교육기관은 개교할 당시 밝힌 존재이유와 기능에 일치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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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발전궤적에 나타난 미국대학:서울대의 경우」(김기석, 우용제, 미국학연구, 제31집 2권, 서울대 미국학연구소, 2008)
Isn’t it a Pyrrhic Victory:Over-privatization & Universal Access in Tertiary Education of Korea,(Ki-Seok Kim and W. J. Woo, Special Issue,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 Vol. 10, No, 1. 125-137)
A Great Leap Forward to Excellence in Research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1994-2006(Ki-Seok Kim, Asia Pacific Education Review Vol.8, No.1, 2007)
The Politics of North Korea’s Unification Policies, 1950∼1965(Cho, SoonSung, World Politics Vol.14 No 2, 1967)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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