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1월초, 노령(露領)에서 활약하던 이동휘(李東輝) 등이 창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해에서 인쇄하여 국내를 비롯한 만주·시베리아 지방 거주의 우리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여 편집, 발행된 신문이다.
상해에서 전혀 배포하지 않은 것은, 이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과 『신대한(新大韓)』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과격파 사회주의계열의 기관지로, 주필에는 김두봉(金枓奉)·김만겸(金萬謙) 등이 논진을 폈다.
호수가 거듭됨에 따라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같은 해 11월 15일자 일본 ‘고등경찰 제36490호’에는 “……수일 전부터 이미 동지(同紙)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손으로 제3호를 발행”이라고 보고되었다. 몇 달 안되어 폐간되고 잡지 『신생활』이 대신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