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3·1운동의 의거소식을 들은 하동군 적량면 면장으로 있던 박치화는 민족적 양심의 가책을 받아 3월 14일 사표를 제출하고 정낙영(鄭洛榮)·정인영(鄭寅永)·이성우(李聲雨)·이범호(李範鎬)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3월 18일(음력 2월 17일) 3·1독립선언서와는 다른 지방 자체의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민족자결의 여론이 일어나는 좋은 기회가 왔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 동포들은 힘을 합쳐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폭동과 난거(亂擧)는 행하지 말고, 인도와 정의의 독립문으로 전진하자고 되어 있다.
그 특징은 3·1독립선언서와 내용이 다른 점, 직접 동포들에게 우리의 힘으로 자결단행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점, 비폭력 내지는 무저항주의의 독립투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점 등이다.
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은 박치화·정낙영·정인영·이성우·이범호·박종원(朴宗源)·이병홍(李炳鴻)·정희근(鄭禧根)·김응탁(金應鐸)·이보순(李輔淳)·황학함(黃學咸)·김두순(金斗淳)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