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를 발행하여오던 대한독립협회에서 이승만(李承晩)의 환국을 맞아 1945년 11월 3일 창간하였다. 타블로이드판 2면의 등사석판인쇄 신문으로 서울 을지로 2가에서 발행하였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고정휘(高政輝)였으나 1946년 3월부터는 유병민(劉秉敏)으로 바뀌고 곧 휴간을 하였다가 6월 20일에 속간되었다. 이 신문은 이승만을 지지하여 그 첫호에서 「건국의 성웅 이승만박사를 맞이하여」라는 논설까지 실었다.
대동단결을 내세운 대한독립협회의 기관지적 성격을 띠었으며 신탁통치에도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1946년 7월 7일에는 콜레라가 발생하였다는 기사를 보도하여 서울시로부터 고발을 당하여 오장환(吳章煥)·고영환(高永煥)이 구금을 당하는 등 필화를 입었다.
1947년 2월 14일자(제267호) 신문에서는 “민주언론 창달의 임무를 일층 강력하게 수행하고자 일체의 구각(舊殼)을 탈각(脫殼)하고 2월 15일부터 『민보(民報)』로 개제(改題)함과 동시에 혁신적인 보도와 주장을 가지고 명실상부한 재출발을 하겠다.”는 사고(社告)를 내고 제호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