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7월 18일 이인직(李人稙)이 천도교계의 『만세보(萬世報)』를 인수하여 제호를 고쳐 창간하였다.
이 신문은 이완용(李完用)이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이인직으로 하여금 경영하게 한 것으로, 이완용내각의 기관지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발행소는 서울회동(會洞 : 지금의 회현동) 85통 4호였으며, 자본금은 2만원이었다. 사장에는 이인직, 총무·발행 겸 편집인에 신광희(申光熙), 주필은 최영수(崔永秀)였다. 『대한매일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신문은 정부의 탁지부(度支部)로부터 매월 500원씩 보조를 받았으며, 1909년 11월 활자개량을 위하여 이완용으로부터 1,000원의 기부금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창간 이후 줄곧 친일정권의 시정을 적극 지지, 선전하였으며, 1909년 11월 14일 『국민신보(國民新報)』·『한성신보(漢城新報)』 등과 공동으로 이토(伊藤博文)에 대한 추도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경술국치 직후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한양신문(漢陽新聞)’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였으나 9월 1일 『매일신보』에 병합,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