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문 ()

목차
관련 정보
대한신문
대한신문
언론·방송
문헌
1907년에, 이완용이 언론 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이인직으로 하여금 창간한 친일 신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907년에, 이완용이 언론 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이인직으로 하여금 창간한 친일 신문.
내용

1907년 7월 18일 이인직(李人稙)이 천도교계의 『만세보(萬世報)』를 인수하여 제호를 고쳐 창간하였다.

이 신문은 이완용(李完用)이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이인직으로 하여금 경영하게 한 것으로, 이완용내각의 기관지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발행소는 서울회동(會洞 : 지금의 회현동) 85통 4호였으며, 자본금은 2만원이었다. 사장에는 이인직, 총무·발행 겸 편집인에 신광희(申光熙), 주필은 최영수(崔永秀)였다. 『대한매일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신문은 정부의 탁지부(度支部)로부터 매월 500원씩 보조를 받았으며, 1909년 11월 활자개량을 위하여 이완용으로부터 1,000원의 기부금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창간 이후 줄곧 친일정권의 시정을 적극 지지, 선전하였으며, 1909년 11월 14일 『국민신보(國民新報)』·『한성신보(漢城新報)』 등과 공동으로 이토(伊藤博文)에 대한 추도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경술국치 직후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한양신문(漢陽新聞)’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였으나 9월 1일 『매일신보』에 병합, 폐간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언론사연구』(정진석, 일조각, 1983)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한국신문사연구』(이해창, 성문각, 1971)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