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유학생회학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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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유학생회 학보
대한유학생회 학보
근대사
문헌
1906년 9월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어 1908년 1월까지 활동한 유학생 단체인 대한 유학생회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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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6년 9월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어 1908년 1월까지 활동한 유학생 단체인 대한 유학생회의 잡지.
편찬/발간 경위

대한유학생회는 1904년 이후 일본유학생들 사이에 출신지역이나 구성원별로 많은 단체들이 설립되자, 분파적 갈등을 해소하고 재정운영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단체의 단일화가 요구되어 설립된 단체였다.

즉 1906년 7월 대한유학생구락부(大韓留學生俱樂部)와 한금청년회(漢錦靑年會)가 민충정공추도조회(閔忠正公追慕弔會)를 마치고 통합에 합의하여 대한유학생회가 설립되었다.

회장에는 상호(尙灝), 부회장에는 최린(崔麟)이 선출되었다.

설립목적은 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와 학식 교환, 그리고 서양문물을 수용해 국가실력을 향상하는 데 있었다. 이 학보의 간행은 이 단체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1907년 3월에 창간된 이 학보는 그 해 5월까지 월간으로 3호가 발간되고는 유학생단체의 통합문제와 관련하여 중단된 것 같다.

내용

강단·학해(學海)·사전(辭典)·문원(文苑)·잡찬·학계휘보·회보 등으로 구성된 학보의 편집은 최남선(崔南善)이 맡았다. 발행인은 유승흠(柳承欽), 인쇄인은 문내욱(文乃郁), 인쇄소는 동경의 명문사(明文舍)였다.

주요 필진으로는 최남선·변영주(卞永周)·윤태진(尹台鎭)·박승빈(朴勝彬)·윤정하(尹定夏)·이승근(李承瑾)·강전(姜荃)·한흥교(韓興敎)·김기옥(金淇玉)·이한경(李漢卿)·최린 등이 보이고 있다.

학보의 내용은 다른 유학생 학보와 다르지 않았는데, 국민계몽을 주로 하여 정신·도덕적 각성을 촉구하고, 더불어 자연과학·사회과학 등 기초적인 지식을 소개하였다. 또 이 학보는 유학생만을 독자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국내의 독자층을 고려하여 주한영서사(朱翰榮書肆)를 국내 판매소로 하고 있었다.

발행 부수가 1,000부였던 이 학보는 1978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되었다. 유학생 통합단체로 출발한 대한유학생회는 계속 유학생단체의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1908년 1월에는 낙동친목회(落東親睦會)·호남학계(湖南學契)와 통합하여 대한학회(大韓學會)를 결성하며 전적으로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한말(韓末) 재일한국유학생(在日韓國留學生)의 민족운동(民族運動)』(김기주, 느티나무, 1993)
『대한유학생회학보(大韓留學生會學報)』(아세아문화사, 1978)
「한말(韓末) 재일유학생단체(在日留學生團體) ‘태극학회(太極學會)’·‘대한유학생회(大韓留學生會)’의 성립과 활동」(김기주, 『배종무총장퇴임기념사학논총(裵鍾茂總長退任紀念史學論叢)』, 1994)
「구한말(舊韓末) 재일한국유학생(在日韓國留學生)의 항일운동(抗日運動)」(김기주, 『전남사학(全南史學)』 3, 1989)
「구한말(舊韓末) 재일본(在日本) 한국유학생단체운동(韓國留學生團體運動)」(정관, 『대구사학(大丘史學)』 25,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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