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유학생회는 1904년 이후 일본유학생들 사이에 출신지역이나 구성원별로 많은 단체들이 설립되자, 분파적 갈등을 해소하고 재정운영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단체의 단일화가 요구되어 설립된 단체였다.
즉 1906년 7월 대한유학생구락부(大韓留學生俱樂部)와 한금청년회(漢錦靑年會)가 민충정공추도조회(閔忠正公追慕弔會)를 마치고 통합에 합의하여 대한유학생회가 설립되었다.
회장에는 상호(尙灝), 부회장에는 최린(崔麟)이 선출되었다.
설립목적은 회원 상호 간의 친목 도모와 학식 교환, 그리고 서양문물을 수용해 국가실력을 향상하는 데 있었다. 이 학보의 간행은 이 단체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다. 1907년 3월에 창간된 이 학보는 그 해 5월까지 월간으로 3호가 발간되고는 유학생단체의 통합문제와 관련하여 중단된 것 같다.
강단·학해(學海)·사전(辭典)·문원(文苑)·잡찬·학계휘보·회보 등으로 구성된 학보의 편집은 최남선(崔南善)이 맡았다. 발행인은 유승흠(柳承欽), 인쇄인은 문내욱(文乃郁), 인쇄소는 동경의 명문사(明文舍)였다.
주요 필진으로는 최남선·변영주(卞永周)·윤태진(尹台鎭)·박승빈(朴勝彬)·윤정하(尹定夏)·이승근(李承瑾)·강전(姜荃)·한흥교(韓興敎)·김기옥(金淇玉)·이한경(李漢卿)·최린 등이 보이고 있다.
학보의 내용은 다른 유학생 학보와 다르지 않았는데, 국민계몽을 주로 하여 정신·도덕적 각성을 촉구하고, 더불어 자연과학·사회과학 등 기초적인 지식을 소개하였다. 또 이 학보는 유학생만을 독자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국내의 독자층을 고려하여 주한영서사(朱翰榮書肆)를 국내 판매소로 하고 있었다.
발행 부수가 1,000부였던 이 학보는 1978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되었다. 유학생 통합단체로 출발한 대한유학생회는 계속 유학생단체의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1908년 1월에는 낙동친목회(落東親睦會)·호남학계(湖南學契)와 통합하여 대한학회(大韓學會)를 결성하며 전적으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