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재단(漢陽財團)이 1960년 10월 19일『평화신문(平和新聞)』을 인수하여 발행하다가, 1961년 2월 1일자(제4732호)부터 제호를 ‘대한일보’로 바꾸어 발행하였다.
사장 및 발행인에 김연준(金連俊), 편집국장에 강영수(姜永壽)가 취임하였으며, 사옥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2가 340에 두었다. 1966년 8월 15일부터 한글 제호로 바꾸었으나, 1973년 3월 15일 이후 다시 한자로 표기하였다.
초기는 석간 단간제(夕刊單刊制)로 간행되었으나 1960년 11월 1일부터 조석간 양간제(朝夕刊兩刊制)로 바뀌었다가, 1961년 8월 20일 정부의 단간제 방침에 따라 다시 석간으로 환원되었다. 체재는 타블로이드배판 8면을 발행하였으며 1면 16단제였다.
이 신문은 한양대학교가 건학정신(建學精神)으로 삼은 ‘사랑의 실천’을 사시(社是)의 첫째로 내세우고 시시비비(是是非非)에 입각한 ‘엄정중립’의 기치를 표방하였다.
1961년 5월 20일 사전검열 없이 내보낸 혁명위원회에 관한 기사가 문제되어, 『대한일보』로 제호가 바뀐 뒤 첫 필화를 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1964년 신문윤리위원회법파동 때 소극적이나마 반대태도를 취한다 하여 정부의 강력한 보복조처를 받기도 하였다.
이 신문은 특히 사설에서 특색을 살리고자 하여 1968년 7월 8일부터 7회에 걸쳐 「개척자와 신념」이라는 제목으로 연속사설을 게재하는 등 여러 차례 연속사설을 실었고, 1970년 8월 15일 사설 561편을 선정하여 사설집 『사랑의 실천』을 발간하였다.
그 밖의 부대사업으로 1966년 10월 19일 창간6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대한일보문화상’을 제정하였으며, 3·1절기념 자전거경주대회·백남배(白南盃)쟁탈 바둑대회·전국대학축구연맹전·대통령기쟁탈 전국대학초청야구대회·전국중고축구연맹전·전국아동미술대회 등을 주관, 개최하였다.
이 신문은 1973년 5월 2일 자진하여 문화공보부장관에게 폐간계를 제출함으로써 그 해 5월 15일 지령 제8622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