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18일 여성운동의 선구자 차미리사(車美理士)에 의해 근화여학교(槿花女學校)로 설립되었다. 한 달 전인 3월 차미리사가 발기한 조선여자교육협회에서 야학을 열어 20명의 여성에게 수신(修身: 도덕)·국어·작법·한문·산수·생리·일어·영어 등을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다.
직업인으로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하여 1922년 2월 양복과와 상업과를 신설함으로써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실업교육의 첫 요람이 되었다. 1934년 재단법인이 설립인가 되면서 1935년 9월 근화여자실업학교로 개편하였으며, 1938년 교명인 ‘근화’가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시비에 따라 교명을 덕성여자실업학교로 변경하였다.
1940년 일제의 탄압과 심한 재정난으로 학교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송금선(宋今璇)이 학교의 운영을 맡아, 같은 해 8월 교장에 취임하였다. 1941년 3학급을 증설하였으며, 송금선의 아버지 송우영의 후원으로 교지(校地)를 확보하고 교사를 신축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0월 10일 재개교하여 이날을 개교기념일로 정하였고, 1946년 8월 6년제 덕성여자중학교로 개편하였다.
1951년 4월 덕성여자고등학교와 덕성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56년 2월 초창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자들의 배움터였던 덕성학원 본래의 방침에 따라 야간부 3학급을 설치하였다. 1968년 과학관, 1980년 도서관을 준공하였고, 1994년 야간부를 폐지하였다.
교훈은 ‘사랑의 정신으로 용서한다, 참는다, 도와준다, 희생한다’이다. 덕을 갖춘 진취적 여성 인재의 양성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학생활동으로는 초창기부터 배구부를 육성하여 1941년 6월 조선여자종합체련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당시 일본의 용곡고등여학교에 승리함으로써 최초로 배구에서 일본 여학교를 물리친 기록을 세웠다.
현재 문학창작반·방송반·미술반·밴드부 등 10여 개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계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2010년 밴드부가 서울시 주최 보컬밴드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 매년 8월에 학교축제인 덕성제가 열린다.
2009년 현재 27학급에 총 932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58명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