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5월 1일 서울 을지로1가에서 타블로이드판 2면으로 창간되었다. 사장 장순각(張洵覺), 주필 고경흠(高景欽), 편집국장 서광재(徐光齋)였다. 이 신문의 논조는 시종일관 좌익계열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극좌익지의 성격을 띠었다.
1946년에는 신탁통치안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1947년 3월 18일자 사설에서는 ‘제주도폭동’을 ‘제주도의 궐기’로 표시하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1948년 2월 23일 국제연합에서 결의된 남한만의 단독선거안에 대하여는 강렬한 논조로 반대하였다.
미군정당국의 『조사월보』 제24호에 의하면 이 신문의 발행부수를 2만4000부로, 『보이스 오브 코리아 Voice of Korea』는 4만부로 추계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상황으로는 많은 부수였다.
그 이유는 이 신문이 공산당의 기관지가 아닌 방계의 좌익지였다는 점이 일부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총선거를 앞둔 1948년 5월 9일 타블로이드판 4면의 임시 증면으로 총선거를 전면거부, 반대한다는 특집호를 발행하고 자진휴간하였다.
그 뒤 이종만(李鍾萬)이 이 신문의 판권을 인수하여 사장에 취임하고 하윤도(河允道)를 편집국장으로 하여, 1948년 12월 15일에 속간호(제673호)를 발행하였다. 복간 뒤에는 그 논조도 달라지고 판형도 블랭킷판 2면제로 바뀌었으나 얼마 뒤 종간되었다. 정확한 폐간일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