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 청동기시대까지 사용한 수확용 농기구.
내용
신석기시대의 돌낫은 봉산 지탑리 2지구, 서울 암사동 4호 집터 등 신석기 중기의 유적에서 출토된다. 각기 약간 죽은 장방형으로 등과 날도 같은 방향으로 약간 휘어 있다. 이들 유적 외에는 돌낫의 출토 예가 없기 때문에 신석기시대의 수확구는 뼈낫이나 맨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신석기시대에는 반달칼이 주된 수확구로 쓰였다. 돌낫은 룽산〔龍山〕문화 이후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제작되기 시작해 상·주 이후로는 반달칼 대신 수확구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벼농사를 지은 화남지방에서는 상·주시대에도 돌낫보다는 반달돌칼이 주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돌낫은 같은 수확구인 반달돌칼에 비해 출토유적과 수량이 현저하게 적다. 최근 출토된 지역으로는 제천시 능강리, 보성군 동촌리, 경주시 충효동 집터유적을 들 수가 있다. 또한 낫이 출토되는 유적에서도 반달돌칼이 공반되고 있어 청동기시대에서도 낫이 수확구로는 거의 이용되지 않은 것 같다.
형태는 매부리모양처럼 생긴 것과 등과 날이 같이 휜 것이 있다. 전자는 벽동 송련리, 강계 공귀리, 북창 대평리 등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후자는 무산 호곡동, 강계 심귀리, 서울 가락동, 부여 송국리, 진양 대평리, 대구 연암산 등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특히, 부여 송국리 54-15호 집터에서 출토된 돌낫은 길이 20여㎝의 대형으로서 자루를 묶을 수 있는 손잡이부분도 있다.
특징
참고문헌
- 「한반도 선사시대출토 곡류와 농구」(지건길·안승모, 『한국의 농경문화』, 경기대학교, 1983)
- 「한국선사시대의 농경과 농구의 발달에 관한 연구」(길경택, 『고문화』 27,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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