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으나 뒤에 여진족이 들어와 수주(愁州)라 하였다. 1435년(세종 17) 여진을 물리치고 여기에 진을 두어 관북지방의 오랑캐를 막던 국방의 요새였으며, 동관소천(潼關小川)이 있어서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강나루를 동관도(潼關渡)라 하였다.
동관진은 성 주위가 2,982척, 높이가 9척이며, 병마첨절제사영(兵馬僉節制使營)이 있어 첨절제사 1인이 주둔하였다. 이곳에는 또한 동관진봉수가 있어서 남쪽으로 북봉(北峯), 북쪽으로는 보청포(甫淸浦)에 호응하였고, 동관참(潼關站)에는 보발(步撥)이 있었으며, 관할 내에는 강변의 파수를 보는 곳이 3개소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포유동물의 화석과 함께 구석기시대의 석기와 골각기(骨角器)가 발견된 바 있다. 동관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9리쯤 떨어져 있는 동건성(潼巾城)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이는데, 동건성은 동건이라는 사람이 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