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인 1945년 10월 10일 광주에서 『광주민보(光州民報)』로 창간되어 1946년 7월 ‘동광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타블로이드판 2면제로 발행되었으며, 발행인 겸 주간은 선미봉(宣美峰)이 맡았다. 이 신문은 당시 한민당이 기관지로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민보’라는 제호와 내용이 좌경이라 하여 문제시되었다.
이로 인하여 1946년 7월에 주간 선미봉이 미군정 수사기관에 구금되고 신문은 휴간되었다. 풀려난 뒤 선미봉은 제호를 ‘동광신문’으로 바꾸고 속간하였으나, 같은해 8월 18일에 기관지화하려는 한민당의 작용에 의하여 좌익지라는 이유로 미군정에 의하여 정간당하였다.
그뒤 이 신문의 발행권은 22만원에 한민당으로 넘어가 기관지가 되었으며, 발행인 겸 편집인에 고광표(高光表)가 취임하였다. 이 신문은 당시 시설의 미비로 컷 없이 활자만으로 편집, 제작되었다.
한편, 테러단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반공 보수지로 일관한 이 신문은 1950년 6·25사변 때 광주에 진입한 공산군에 의하여 강제로 휴간된 채 소생하지 못하고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