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에 실린 범례에 책명 가운데 ‘잠헌(簪獻)’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잠’은 잠영(簪纓)의 뜻으로 높은 벼슬아치가 쓰는 관(冠)의 꾸미개[飾]를 말하는데, 곧 귀인이나 고관을 의미한다. ‘헌’은 문헌의 뜻으로 과거의 문물 · 제도를 연구하는 데 자료 또는 근거가 되는 전적(典籍)과 현자(賢者)를 가리킨다.
본서의 판권지에 의하면 저작발행자는 유석태(柳錫泰)인데 이석에게 저작을 위임하고, 유승호(柳丞浩)에게 발행을 위임하여, 1914년 윤형규(尹衡逵) 등이 합천에서 발행하였다. 이후 1916년에 이석이 유석태의 모본(1914년본)을 토대로 하여 편찬한 목활자본도 존재한다.
12권 1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우리나라의 문물제도를 정리하는 사업은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등의 편찬에 지리지(地里志)라는 형태를 통해 부분적으로 시행되어오다가, 조선 전기에 이르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50권)을 발간한 데 이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뒤 1531년(중종 26) 대제학 이행(李荇) 등이 이를 증보 · 수정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간행하였다. 그 뒤 1770년(영조 46) 홍봉한(洪鳳漢) 등이 왕명에 의해 중국 원대(元代)의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본받아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00권 40책)를 편찬 · 간행했고, 1780년(정조 4)에 이만운(李萬運) 등이 이를 146권으로 증보 · 편성해 『증정문헌비고(增訂文獻備考)』를 편찬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조선왕국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이후 일본과 서양의 문물을 수용해 사회의 모든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함에 따라, 다시 1903년부터 5년의 세월을 거쳐 박용대(朴容大)를 포함한 30여명의 문사(文士)들이 이를 증보 · 수정해 250권으로 편성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편찬 · 간행하기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변동과 제도의 변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찬전적(官撰典籍)은 규모가 방대해 재정상의 이유로 민간에 널리 보급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해 각 지방의 학자들이 이를 요약 · 정리해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한 책을 편찬 · 간행하여 민간에 폭 넓게 보급시킴으로써, 지식층의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전통문화의 계승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이 책의 전신이라 할 『조선잠헌보감(朝鮮簪獻寶鑑)』은 이 책보다 2년 앞선 1914년에 송병유(宋秉游) · 이병두(李秉斗) 등을 포함한 기호 · 호남 지방의 유생 30여명에 의해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의 고산서원(考山書院)에서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이 책은 권1에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삼한 · 신라 · 고구려 · 백제 · 고려 및 조선의 순종에 이르기까지의 왕실의 계통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서술을 비롯해 각 시대에 배출된 중요 인물들에 대한 약력 등을 체계적으로 수록하였다. 권2에 상신(相臣) · 장신(將臣) · 인대(麟臺), 권3·4에 명신(名臣) · 문형(文衡) · 호당(湖堂) · 청백(淸白), 권5에 유림, 권6에 유현(儒賢) · 일사(逸士) · 문도(門徒), 권7에 문묘배향 · 종묘배향 · 원우(院宇) · 각성출래시조(各姓出來始祖) · 풍아(風雅) · 기로(耆老) · 진목(賑睦) · 필원(筆苑) · 잡저, 권8에 원공(原功) · 효자 · 절의 · 열녀, 권9∼12에 세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잠헌보감』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각 관청의 실무 및 구성원 등을 밝힌 ‘조선관제’ 부분이 빠지고, 각 시대별로 일어난 중요 사건에 대해 잡저 · 보유(補遺)의 형태로 분석에 치중해서 서술한 역사 기록이 추가된 점을 제외하고는 체재에서 차이는 거의 없으나, 규모면에서 두 배 가량 많은 인물을 수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