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초기 사립 여학교들이 외국 선교사나 왕실에 의하여 세워진 것임에 반하여 동덕여자고등학교의 모체인 동덕여자의숙은 민간인에 의하여 설립된 최초의 여학교이다.
1908년 4월 28일 조동식(趙東植)이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교육이 필요함을 깨닫고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동원여자의숙(東媛女子義塾)으로 설립하였다. 1909년 4월에 김인화(金仁和)가 운영하는 동덕여자의숙(同德女子義塾)이 경영난으로 어려워지자 이를 합병하면서 교명을 동덕여자의숙으로 변경하였다.
1910년 3월 고등속성과를 부설함으로써 중등교육이 시작되었고, 초가로 된 교사에서 10명의 신입생으로 시작하여 1911년 제1회 졸업생 9명을 배출하였다. 교과목은 수신(修身: 도덕)·국어·한문·역사·산술·이과(理科: 자연) 등이었다.
초창기 학교의 재정이 극히 어려웠으나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를 설립자로 추대하여 이를 극복하였고, 1911년 고등속성과를 수업연한 3년의 동덕여학교로 개편하였다. 1915년관훈동에 2층짜리 현대식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1926년 4월 4년제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정식 인가되었다.
1932년이석구(李錫九)가 사재(私財)를 희사하여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38년 동덕고등여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1946년 6년제 동덕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학제변경에 따라 1951년 동덕여자중학교와 동덕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82년 야간부 상과를 병설하였으며, 1986년 2월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90년 9월 생활관을 준공하였다.
2009년 현재 43학급에 총 1,595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94명이 재직하고 있다.
교명인 ‘동덕(同德)’은 『장자』에 나오는 ‘동문수덕(同門修德)’을 일컫는데, 한 배움의 보금자리에서 덕성과 학문을 연마하여 국가 사회를 위한 유용한 재목이 되자는 뜻이다.
초창기의 교훈은 ‘수덕(修德)·헌성(獻誠)·수분(守分)’이었고, 현재는 ‘덕성을 함양하자, 지능을 계발하자, 창의에 주력하자’이다.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도덕적이며 창의적인 중견여성을 양성하기 위해서 봉사·수련 중심의 인성교육의 내실화, 정보매체를 이용한 교수·학습활동의 활성화, 기초학력 부진학생 특별지도 등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학생활동으로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 등의 항일투쟁과 농촌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27년에는 농구부와 탁구부를 창단하였고, 1934년 제1회 전국여자육상경기대회를 주최하였다.
1937년 탁구·정구·육상 분야에서 우리나라 대표로 일본 원정경기에 참가한 바 있고, 1983년 전국종합학생종별탁구선수권대회와 캐나다선수권선발전에서 우승하였다. 1929년부터 해마다 동덕음악회를 개최하고 있고, 1990년『동덕 80년사』를 간행하였다. 학교신문 『동덕』과 영자신문 『VEGA TIMES』을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