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여자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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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여자고등학교
동래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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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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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
연원 및 변천

1895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선교회에서 부산진일신여학교(釜山鎭日新女學校)로 설립하였다.

1890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결성된 장로교 여자선교연합회는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진 좌천동에 임시 가옥을 빌려 3년제 소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멘지스(Menzies, 閔之使)가 취임하였다.

1909년 3년제 고등과를 함께 설립하여 1913년 고등과 첫 졸업생 4명을 배출하였으며, 학제 개정에 따라 1915년에 초등과와 고등과를 각각 4년제로 개편하였다. 1919년 부산지방에서는 최초로 3·1운동을 주도하여 교사 2명, 학생 11명이 투옥되었다.

1925년 교세의 발전에 따라 고등과를 현재 위치인 동래로 옮기고 교명을 동래일신여학교(東萊日新女學校)로 바꾸었다. 한편 교장은 1914년부터 제4대로 취임한 마가렛(Margaret,S.D.)이 그대로 맡아 1940년 학교 이양 때까지 26년 동안 봉직하였다.

1926년 동래일신여학교의 교과목은 수신·성경·국어·영어·역사와 지리·수학·이과·도화·가사·재봉과 수예·음악·체조·교육·법제와 경제 등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와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설립 선교단의 교육 철수 결정으로, 폐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때 장래 민족이 다시 일어서는 길은 교육에 달렸음을 확신한 선각자 오태환(吳泰煥)·김명오(金明五)를 비롯한 우국 유지들이 총 50여 만원으로 재단법인 구산학원(龜山學園:현재 학교법인 동래학원)을 설립하여 그 경영권 일체를 인수하고, 1940년 5월 30일동래고등여학교로 개교하였다.

이는 민립적(民立的)인 의의를 갖는 민족 여성교육의 전기가 되었다. 초대 교장 권영운(權寧運)은 민족항일기 말의 압정하에서 민족전통의 부도(婦道)·부덕(婦德) 교육을 강화하였다.

광복과 함께 신학제 실시에 따라 1946년 6년제의 동래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교육법」 개정으로 3년제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5년 5월 개교 80주년 기념 학교사를 발간하였으며, 1985년 5월에는 개교 90주년 기념 「동래학원 90주년 기념 화보」를 발간하였다. 1987년 3월에는 학교를 현 위치인 금정구 부곡동 산 7-1번지의 신축교사로 이전하였다. 1995년 2월에는『동래학원 백년사』를 발간하고 동년 5월에는 예절관인 ‘벽연재’를 개관하고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실시하였다. 2004년 11월에는 영자신문 옥샘헤럴드를 발행하였다.

현황

2008년 3월 현재 교직원은 85명이고, 졸업생은 108회 총 2만 7, 119명을 배출하였다.

1950년에 ‘겨레의 넋은 국어에 있다. 사람의 값은 지식에 있다. 나라의 힘은 통일에 있다.’라는 교훈을 제정하여 그 얼의 실제화에 힘을 쓰는 한편 국적 있는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역량과 건강한 품성을 지닌 애국 애족 애향하는 민주시민을 기른다’라는 교육목표 아래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통한 학교 경영의 선진화, 학력신장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활동 지원과 교육여건 개선, 사고력 창의력 외국어 등의 특성화 교육을 통한 글로벌 시대의 미래인재 양성, 교육 경쟁력 재고를 위한 변화와 혁신의 지속적인 추진에 교육력을 모으고 있다.

특색사업으로는 영어쓰기, 영어관련 동아리활동과 영어친화학습, 통합논술활동이 있다.

참고문헌

동래여자고등학교(http://dongnae-gh.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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