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압으로 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을 계기로 국권상실의 위기를 감지한 당시 우리 민족의 선각자들은 국권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다각도로 전개하면서 특히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같은 구국운동의 전개에 따라 1906년부터 1910년 말까지 사이에 전국에 걸쳐 수 천 여개의 사립학교가 설치되었다.
이들 사립학교를 설립주체별로 분류하면 개인이 설립한 학교, 유지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학교, 종중(宗中)이나 문중에서 세운 학교, 각종 단체가 설립한 학교,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이 주동이 되어 세운 학교, 특정지역에서 세운 학교, 기독교인들이 교회 내에 세운 학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당시에 조직되어 있던 학회(學會) 등 여러 형태의 단체에서 세운 학교가 상당수에 달하였고, 동명학교는 동아개진교육회가 세운 학교이다. 동아개진교육회에서는 1907년 2월에 황해도 금천군의 조포(助浦)에 동명학교를 설립하고 4년제의 보통과와 중학과를 개설하여 중등교육도 실시하였다.
동명학교의 중학과는 3개년 과정으로 연령 16세부터 25세까지의 남자를 입학자격으로 하여 한문·산술·어학·만국지지·만국역사·이학(理學)·경제학·체조·도화 등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동명학교의 직원은 교장에 김중환(金重煥), 부교장에 이시노(李時魯), 교사에 한두석(韓斗錫)·지영조(池迎潮)·황범석(黃範錫), 강사에 윤순용(尹舜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