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

선사문화
유물
청동기시대 나무를 가공하는데 사용한 청동제 도끼.
이칭
이칭
청동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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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청동기시대 나무를 가공하는데 사용한 청동제 도끼.
개설

평안북도 의주 미송리를 비롯해 함경북도 영흥·어랑, 황해도 봉산 송산리·정봉리, 대구광역시 서변동, 전라남도 화순 대곡리, 영암, 충청남도 아산 남성리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동부는 크기나 형태로 보아 나무를 자르거나 쪼개는데 쓰이기보다는 나무를 가공하는 공구, 즉 자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베리아·러시아에는 대형 동부가 있으나 요령지방이나 한반도에는 아직 나무를 자를 만큼 큰 형태는 나온 예가 없다.

내용

한반도 출토품은 모두 주조품으로, 형태로 보아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나무자루를 끼우는 투겁이 장방형이고 허리가 가늘며 날부분이 부채꼴처럼 크게 확장된 부채도끼〔扇形銅斧〕로 크기는 10㎝ 내외이다. 장식무늬가 없는 것도 있으나 어떤 것은 투겁 가까이 돋을띠〔突帶〕가 둘러져 있고 점선문(點線文)이나 거치문(鋸齒文)이 시문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비슷한 크기에 투겁이 납작한 타원형을 이루고 투겁 가까이에 몇 줄의 돋을띠가 있으며, 허리에서 약간 벌어지다가 아래로 곧바로 내려오거나 또는 타원형의 주머니꼴을 이루는 어깨달린구리도끼〔有肩銅斧〕형태이다. 두 형태의 도끼는 반출유물에 따라 시기적으로 차이가 난다.

부채도끼는 미송리를 비롯해 영흥(거푸집 2개체분), 부여 송국리(거푸집), 속초시 조양동, 함경북도 어랑, 아산 남성리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 같은 형태는 요령지방의 선양〔瀋陽〕·차오양〔朝陽〕·랴오양〔遼陽〕·진시〔錦西〕·뤼다시〔旅大市〕등의 요령 동검문화 유적에서 널리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이른 시기에 요령 동검문화의 영향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의 유물로 생각된다.

어깨달린구리도끼는 부여 구봉리, 함평 초포리, 봉산 송산리, 영암(거푸집 4개체분), 대구 서변동, 화순 대곡리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적들에서는 여러 형태의 한국식 동검이 함께 반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초기에 부채도끼가 쓰이다가 후기에 내려와 어깨달린구리도끼가 사용되었다. 그 변천과정은 영암에서 출토된 거푸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영암에서는 총 5개체분의 도끼거푸집 중 부채도끼 요소를 가진 도끼 1점이 어깨달린구리도끼와 섞여져 있다. 평면 장방형인 단책형(短冊形)이고, 의기(儀器) 또는 실용기의 특징을 지닌 중국 도끼와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계통상 크게 유라시아대륙의 청동기문화와 이어지는 한 갈래의 청동기이다. 이처럼 동부는 청동기문화의 교류와 전파양상을 보여주는 표지유물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한국청동유물의 연구」(윤무병, 『백산학보』 12, 1972)
「요녕지방의 청동기문화」(이강승, 『한국고고학보』 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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