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목(座目)·명안(名案) 혹은 안(案)이라고도 하며, 사족들의 경우 생년월일·호·본관·등과명·부명이 기재되었다. 간혹 동안이라는 명칭이 동약 자체를 지칭할 경우도 있다. 16세기 이래 성행한 동약은 사족들에 의한 향촌지배기구로 구실하였다.
시초에는 동약의 성원자격은 그 동리에 거주하는 사족에 한정되었다. 그와 같은 사족중심의 폐쇄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동안이 작성되었고, 그를 통하여 상하의 신분질서를 강화할 수 있었다.
동안에는, 동약에 사족만 참여하는 경우 사족들만 입록(入錄)하였고, 그 안에 서얼(庶孽)은 따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그 뒤 동의 양민도 참여하게 되자 신분의식은 더욱 강조되어 사족은 상계원(上契員)으로, 양민은 하계원(下契員)으로 입록되었다. 혹은 상계·중계·하계로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동안은 새로 입동(入洞)한 사람이 많거나, 사망 혹은 연령 자격획득으로 성원의 변화가 발생하였을 때 개수(改修)되었고, 이 때 동약 자체를 변경하는 사례가 많았다. 혹은 봄과 가을로 동안을 개수한 예도 있다. 사족체제가 안정되었던 17세기에는 동안의 개수가 순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일률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족체제가 붕괴되어가던 18세기부터 동약 자체의 성격이 변질되기 시작하자 동안의 개수는 부실하게 되었고, 또한 동안에서 하계원의 입록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 이후 동약은 양반가문만의 모임이 되어 향촌지배기구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