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대증현(大甑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동평현으로 고쳐 양주(良州) 영역의 동래군(東萊郡)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양주(梁州)의 임내로 하였다가 1405년(태종 5) 동래현에 이속시켰다. 1409년 다시 양주에 이속하였다가 1428년(세종 10) 동래현에 환속하였다.
동평현은 일본에 대하여 군사ㆍ외교면에서 중요한 지역이므로 진영을 설치하고 동평현령이 왜사(倭事)를 보기도 하였으나, 1547년(명종 2) 동래현이 도호부로 승격됨에 따라 동래의 직촌이 되었다.
동평의 지리적 위치는 동래의 치소에서 남쪽으로 20리 지점에 있었다. 동평현의 진산(鎭山)이었던 부산(釜山)은 그 모양이 마치 가마솥과 같아서 생긴 지명이며, 이곳에 옛 산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동평의 동쪽 해안에 포이포진(包伊浦鎭)이 있어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였다. 북쪽의 황봉산(荒峯山)에는 봉수가 있었고, 해안지방에는 목장이 있었으며, 동백섬ㆍ오륙도 등을 해안에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