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은 영창서관(永昌書館)에서, 이후 1974년 박영사에서 재간행된 뒤, 1979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초간원본 그대로 영인, 출판되었다.
오지영은 1894년(고종 31)의 동학농민운동에 직접 참가하여 양호도찰(兩湖都察)이라는 동학의 지도자로 남북접 간의 대립관계를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직접 동학농민군을 지도하여 봉기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생한 체험과 견문이 이 책에 역력히 드러나 있다.
내용은 1860년의 동학 창건으로부터 1905년 손병희(孫秉熙)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 선포되고, 3·1독립운동을 겪으면서 1920년대 초의 스스로 주도한 천도교 혁신운동의 경과에 이르기까지의 약 60여 년간의 동학운동사를 다루고 있다.
구성은 1905년 천도교 선포 이전의 동학운동사는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데 반해 그 이후의 서술은 매우 소략하다. 제1장의 교조 최제우(崔濟愚)에 의한 동학의 창도(創道)와 포교, 처형까지의 경과를 동학과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계되는 사실을 통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로 초기 동학사상의 역사적 전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제2장은 최시형(崔時亨)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교조신원 운동을 거쳐 동학농민군의 봉기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동학농민군이 전주화약의 조건으로 제출한 폐정개혁안 12개 조목이 들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도 동학농민군의 격문(檄文)·창의문(倡義文) 등도 보이며 자료로서 『승정원일기』까지 첨기되어 있다. 제3장은 손병희의 민회운동과 천도교의 창설문제를 다루고, 제4장은 교회 분립 뒤의 천도교의 전개과정과 3·1독립운동을 천도교와 기미사건이라 하여 간략히 다루었다.
민족독립운동 사상 가장 중대한 의의를 지니는 3·1운동을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 관련자 여러 명이 투옥되었다는 내용만 여섯 행 정도로 간략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조건 아래서의 저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간다.
척왜척양(斥倭斥洋)을 척○척양(斥○斥洋),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조선○○선언서(朝鮮○○宣言書)로 기술하고 있는 것도 복자(伏字)로 표시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적 사실의 은폐를 막는 데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자취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저자 스스로가 직접 관여하고 주도한 천도교 신파의 혁신운동을 실었고, 부록으로 동학 각 파의 유별을 첨기하고 있다.
이 책은 천도교의 교단측을 대변하고 있는 이돈화(李敦化)의 『천도교창건사』와 쌍벽을 이루는 저술이다.
천도교혁신파인 연합교회파의 입장에서 동학사상 및 동학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서술한 책인 것이다. 특히 제5장 이하의 내용은 자기 교파의 입장에서 이른바 혁신운동의 전개와 좌절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